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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생각] 진격의 시대, 1960년대가 오늘의 세계 만들었다

등록 2022-10-14 05:00수정 2022-10-14 09:25

인문학자 김경집의 60년대 현대사 강의
자유와 저항이란 시대정신, 이를 이끈 청년
“다음 시간을 위한 동력과 좌표” 제공

이미지 동아시아 제공
이미지 동아시아 제공

진격의 10년, 1960년대
비틀스에서 68혁명까지 김경집의 현대사 강의
김경집 지음 l 동아시아 l 3만2000원

끊임없이 흐르는 시간의 강이 그려낸 지난 궤적에는 유난히 물길이 크고 깊게 요동친 구간들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가 어쩌다 지금 위치에 도달했는지 염두에 두고 살펴보면, 이 새로운 방향으로 거침없이 길을 냈던 가장 최근의 구간을 발견하게 된다. 제국주의의 지배가 끝나며 그동안 식민지였던 수많은 나라들이 새로 탄생했고, 미국과 소련의 대립이 인류를 절멸에 이르게 할 수 있는 핵전쟁의 위협까지 불렀으며, 계급뿐 아니라 인종, 젠더 등에 따른 다양한 주체들이 본격적으로 해방을 추구하게 된 시기. 불세출의 대중문화 아이콘 비틀스가 전세계를 강타했고 학생들은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며 사랑과 평화를 부르짖었으며, 인류가 처음으로 우주를 건너 달에 착륙했던 시기. 1960년대다.

인문학자 김경집(63)이 쓴 <진격의 10년, 1960년대>는 1960년대 세계의 역사를 마치 모자이크처럼 엮어서 보여주는 책이다. 지은이가 추린 이야기는 김주열의 죽음으로 촉발된 한국의 4·19혁명으로 시작해 미·소의 대결, 아프리카 식민지 해방, 중동전쟁, 흑인인권운동과 여성운동, 히피 문화와 우드스톡, 68혁명, 베트남전쟁, 아폴로11호와 달착륙 등 굵직한 사건들을 통과해 평화시장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내놓은 전태일 열사에까지 닿는다. 이 모든 사건들이 범세계적이고 전지구적이었다는 점에서 지은이는 “인류 전체 역사에서 가장 역동적이었던 시대”였다고 말한다.

그저 많은 사건들이 벌어졌기 때문에 ‘역동적’인 것은 아니다. 지은이는 60년대를 “현대 세계의 기준점”이라고 본다. 인종차별 철폐, 여성해방, 인권과 정의라는 보편적 가치 등 “지금 우리가 21세기에 구가하고 있으며 여전히 진보하려고 매진하고 있는 가치를 구현했다는 점에서”, 곧 과거 당연하지 않았던 것들을 오늘날 당연한 것들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중심에는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오며 관철됐던 하나의 방향, “‘자유로운 개인’의 온전한 발전”이 있다. 지은이는 주요 사건들의 크고 작은 인과 고리를 엮어내면서 거대한 역사의 흐름 자체를 드러내 보이는 데 주력한다.

여성과 흑인에 대한 차별 아래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던 캐서린 존슨. 이미지 동아시아 제공
여성과 흑인에 대한 차별 아래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던 캐서린 존슨. 이미지 동아시아 제공

가톨릭교회의 변화를 위해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소집한 요한 23세. 이미지 동아시아 제공
가톨릭교회의 변화를 위해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소집한 요한 23세. 이미지 동아시아 제공

쿠바 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뒤에도 다른 혁명에 뛰어들었던 체 게바라. 이미지 동아시아 제공
쿠바 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뒤에도 다른 혁명에 뛰어들었던 체 게바라. 이미지 동아시아 제공

‘자유로운 개인’이라는, 근대와 현대를 관통하는 인류 보편의 가치는 두 차례의 전쟁으로 유보되거나 퇴행했다. 서구 유럽에서는 전쟁이 끝난 뒤 물질적 풍요를 구가하게 됐지만, 스스로 이를 개척했다 여기는 기성세대는 보수적으로 흘렀다. 참정권 투쟁 등 여성의 권리에 대한 요구는 이전 시대부터 꾸준했고 전쟁을 거치며 여성의 노동력이 사회적으로 확대됐지만, 전쟁이 끝난 뒤 일자리는 다시 남성의 차지로 돌아갔고 여성을 가정에 묶어두려는 압력이 다시 커졌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인간 컴퓨터’로서 탁월한 수학 실력을 발휘했던 캐서린 존슨은 흑인이란 이유로 임시직에 머물며 화장실도 따로 써야 했다. 아프리카에서 대부분의 나라들이 1960년대에 독립했으나, 제국주의 식민 통치의 잔재는 빈곤과 폭력을 일상으로 만들었다. 서구 열강의 이해관계에 따라 요동치는 국제 질서는 동유럽 혁명의 좌절, 쿠바 미사일 위기, 베트남전쟁 등 끊임없는 위기를 만들어냈다.

1960년대는 이처럼 인간의 ‘자유’를 가로막는 모든 것들에 대한 ‘저항’이 전지구적 차원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한 시기였다. 그리고 저항을 주도한 ‘청년’들은 주어진 연결고리가 없이도 서로 공명했다. 이를테면 미국에서 인종차별에 저항한 흑인민권운동은 여성운동·페미니즘과 함께였을 뿐 아니라 베트남전쟁에 대한 반전운동에서도 한데 뭉쳤다. 전세계적 현상이 될 정도로 청년 세대의 인기를 얻은 비틀스는 미국에서 공연할 때 ‘인종 분리’ 조처가 철회되지 않으면 공연하지 않겠다며 이를 계약 조항으로 넣었다. 인간이 스스로 파괴한 환경을 감당해야 한다는 인식도 이때 생겼다. “1960년대 세계의 가장 특징적인 현상과 핵심은 ‘자유·저항·혁명’, 그리고 청년이었다.” 프랑스에서 분출한 ‘68혁명’은 이런 특징이 분출한 60년대의 정점이었다. 청년들은 정치·경제 영역에 어정쩡하게 머문 기성세대와 달리 문화, 제도, 도덕규범, 인종 문제와 성적 억압 등 일상의 모든 삶으로부터 억압과 착취의 개념을 새롭게 발굴해냈다.

1961년 5월16일 군부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 이미지 동아시아 제공
1961년 5월16일 군부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 이미지 동아시아 제공

1963년 6월11일 남베트남 응오딘지엠의 독재에 소신공양으로 저항했다. 이미지 동아시아 제공
1963년 6월11일 남베트남 응오딘지엠의 독재에 소신공양으로 저항했다. 이미지 동아시아 제공

1969년 7월20일 아폴로11호의 달착륙선 이글호가 인류 최초로 달 표면에 도착했다. 이미지 동아시아 제공
1969년 7월20일 아폴로11호의 달착륙선 이글호가 인류 최초로 달 표면에 도착했다. 이미지 동아시아 제공

지은이는 일반 독자들에게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는 두 개의 사건을 상대적으로 크게 다뤘는데,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남미주교회의다. 교황 요한 23세가 소집하며 시작하고 바오로 6세가 마무리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라틴어가 아닌 자국어로 미사를 드리게 하고 다른 종교를 인정하는 등 세상에서 가장 보수적인 집단인 가톨릭교회가 스스로 선택한 혁명이었다는 점에서 “1960년대의 가장 상징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혁신’을 제기한 바티칸공의회를 뒤이어, 남미의 주교들은 콜롬비아 메데인에서 연 주교회의를 통해 “민중이 제도화된 폭력에 억압당하고 있다”고 천명하는 데로 나아가며 ‘해방과 참여’의 가치를 제시했다.

“역사의 모든 시간은 다음 시간을 위한 동력과 좌표를 마련한다.” 어느 역사에나 나아가는 것과 물러나는 것이 모두 있기 마련이다. 그렇게 혼돈에 찬 흐름을 거친 뒤 남은 퇴적층은 때로 어떤 방향을 가리키기도 한다. 지은이는 책의 뒷부분에서 한국인으로서 자신이 경험한 현대사를 서술했는데, 이는 경제발전·반공주의 등에만 매몰됐던 한국 사회가 그동안 1960년대의 인류사적·세계사적 의미와 그것이 제기한 ‘시대정신’을 새길 기회를 제대로 갖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의 표출로 보인다. “한꺼번에 그리고 거의 모든 문제에서 지구 전체가 과거의 체제와 세계관에 대해 치열하게 다투고 투쟁했던” 시대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오늘날의 청년이 앞으로 어떤 세계를 만들 것이냐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언제나 ‘Post+무엇’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 그 ‘Post’(이후)를 알기 위해 ‘Past’(과거)를 찾는 게 바로 역사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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