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과 은둔의 현자 호라티우스
김남우 지음 l 문학동네 l 1만5000원
퀸투스 호라티우스 플라쿠스(기원전 65~8)는 베르길리우스와 함께 로마제국 초대 황제 아우구스트 시절에 활동한 로마의 시인이다. ‘오늘을 즐겨라’(carpe diem)라는 경구를 남긴 시인으로 유명하다.
호라티우스는 해방노예 출신이었던 아버지의 높은 교육열 덕에 로마에서 교육받고 아테네로 건너가 아카데미아 학원에서 공부했다. 공화정 말기에 내전이 일어나자, 카이사르를 암살한 부르투스의 공화파 군대에 가담했다. 하지만 전사로서는 그다지 뛰어난 인물이 아니어서 필리피 전투에서 안토니우스 군대에 패해 모든 것을 잃고 겨우 목숨만 건졌다. 이후 시인으로서 삶을 시작한 호라티우스는 네 권의 <서정시집>을 비롯해 여러 형식의 시를 썼다. 아우구스트 황제 집권 시절인 기원전 17년에 로마 건국 700년을 기념해 열린 ‘로마 백년제’의 대미를 장식한 <백년제 찬가>를 지어 올려 명성을 높였다. 고대 로마 문학 전문가 김남우 정암학당 연구원이 쓴 <가난과 은둔의 현자 호라티우스>는 이 <백년제 찬가>를 중심에 두고 호라티우스의 시 세계를 살피는 책이다.
로마제국 시인 퀸투스 호라티우스 플라쿠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책의 제목이 알려주는 대로 호라티우스는 ‘가난과 은둔의 현자’라고 부를 만하다. 시편들을 통해서 끊임없이 부와 권력을 탐하는 도시의 삶을 비판하고 적은 소유에 자족하는 삶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호라티우스 자신도 문화예술을 후원한 당대의 정치가 마이케나스가 마련해준 사비움의 시골 농장에서 소박한 삶을 살았다. 호라티우스의 이런 삶은 자신이 신봉한 에피쿠로스주의 사상을 실천한 것이기도 했다.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는 욕망을 줄여 검소한 삶에 만족함으로써 얻는 기쁨을 뜻한다. ‘오늘을 즐겨라’라는 말도 헛된 욕심으로 인생을 탕진하지 말고 오늘 하루를 알차게 보내라는 에피쿠로스주의적 인생관이 깃든 말이다. 호라티우스의 생각은 <풍자시>에 들어 있는 ‘시골 쥐와 서울 쥐’ 이야기에서도 발견된다. 서울 쥐가 시골 쥐에게 대도시의 화려한 삶을 보여주자 시골 쥐가 넋이 나가 서울 쥐와 함께 살기 시작하는데, 덩치 큰 사냥개가 들이닥치자 ‘착각’에서 깨어난다는 우화다.
그런 생각을 품고 살던 호라티우스가 아우구스트 황제의 명을 받아 쓴 것이 <백년제 찬가>다. 애초에 황제가 요구한 것은 로마의 과거와 현재의 영광을 찬양하는 것이었지만, 호라티우스는 이 시에서 100년 뒤의 로마를 염두에 두고 미래의 로마를 열어갈 소년소녀들에게 지혜로운 조언을 한다. 영광에 도취하지 말고 절제를 통해 평화와 행복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이런 점에서 호라티우스는 앞 시대 그리스의 시인들의 임무, 곧 ‘지혜의 교사’라는 임무를 스스로 떠맡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