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혜 산문
이주혜 지음 l 에트르 l 1만5800원 #40대 대학 동기들이 모였다. 여의도에서 온 회사원, 연구실에서 온 교수, 방송국 피디 등이 저마다 “뭘 하다 오는 길”인지 말했다. 이윽고 저자 차례. “애들 밥해주고 왔어.” 친구들이 웃었다. #5명의 유자녀 기혼 여성들이 카페에 모여 수다를 떨었다. 시댁에서 겪은 차별과 남편이 안겨준 서러움을 털어놨다. 한참을 떠드는데, 따가운 시선이 화살촉처럼 박혔다. 고개 들어보니 군복 차림 남자들이 혀를 차며 보고 있더란다. 파주의 한 카페에서 저자가 겪은 일. 수모가 일상에 소복소복 쌓이면 마음의 병이 찾아온다. 수모의 정도와 깊이는 중요하지 않다. 크기가 손톱만 해도 삶을 뿌리째 흔들고 고통의 늪에 빠트리기 충분하다. 수모란 그런 것이다. “사람은 다면체”라고 믿는 저자에게 수모는 분절된 세상 시선이 개인의 한 단면만 들춰 생긴 “뭉근한 상처”다. 책은 저자가 이런 소소한 삶의 상흔들을 딛고 자신의 “이름을 찾아가는 여정”과 “존재 증명 방식”으로 선택한 글쓰기, 자신이 목격한 최초의 여성 작가인 할머니와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작가는 더 나아가 2부에서 앨리스 제임스(일기 작가·1848~1892), 캐서린 맨스필드(작가·1888~1923), 앤 섹스턴(시인·1928~1974), 포루그 파로흐자드(시인·1934~1967) 등 가부장제의 억압이 횡행했던 부조리한 시대를 만나 사장되었던 여성들을 소환한다. 그들이 겪은 불안과 자기 파괴, 이를 극복한 궤적들을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해석해낸다. 저자의 영혼을 맨손으로 만지는 듯한 감촉을 선사하는 그의 문장도 이 책을 돋보이게 하는 지점. 그 글에서 뜻밖에 동질감을 발견한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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