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책&생각] “과학과 문학의 경계 넘나드는 과학서 기다려요”

등록 2022-10-21 05:00수정 2022-10-21 15:10

번역가를 찾아서│김명주 번역가

생물학 전문 번역가 김명주
노벨상 수상자 페보부터 도킨스까지
천생 ‘이과’의 과학서 번역 한길
좋은 책 읽으며 ‘독서멍’ 즐기기도

얼마 전 발표된 2022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인간 진화 연구에 평생을 바친 스반테 페보에게 돌아갔다. 화석과 미라를 연구하는 학자가 생리의학상을 받은 건, 디엔에이(DNA) 분석 기술이 발전하면서 진화 연구에 유전학을 접목하는 것이 흐름이 된 까닭이다. 페보 박사는 4만년 된 네안데르탈인의 뼛조각에서 극소량의 디엔에이를 추출해 피시아르(PCR) 기술로 증폭한 다음 온갖 오염과 오류를 통제하며 10여년을 연구했고, 네안데르탈인이 현생인류(호모 사피엔스)와 교잡했으며 지금의 우리와 2%가량 유전적으로 유사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김명주 번역가는 그 고되고 지난한 연구 과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 페보 박사의 연구 과정이 담긴 <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부키, 2015)를 옮기면서 “다수가 불가능할 거라 여긴 연구에 도전한 과학자의 고뇌와 막막함, 초조함까지 오롯이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작업실에서 혼자 일하며 과학자의 연구실을 들여다보는 번역가라니, 인생은 참 알 수 없지요. 학부 전공인 생물학으로 대학원에 진학했다간 평생 연구실에만 틀어박혀 살 것 같아서 세상과 어울려 살려고 통·번역대학원을 선택했는데 말이에요(웃음).”

수학을 잘하는 천생 ‘이과’인 그가 ‘문과’ 중에서도 타고난 언어 감각이 필요하다고 알려진 통·번역계로 삶의 경로를 바꾼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어쩌면 조금 위축됐던 것 같기도 하다. “어릴 적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던 것 말고는 연관된 게 하나도 없는, 너무나 다른 분야니까요. 번역 일을 하면서도 부족하다,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에 우울해지곤 했는데, 이제야 조금 편안해졌어요.”

겸손이 지나쳐 병이 된 경우라고 할까. 김명주 번역가는 <생명 최초의 30억 년: 지구에 새겨진 진화의 발자취>(2007)부터 좋은 평을 받았다. <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를 비롯해 유발 하라리의 명저 <호모 데우스>(김영사, 2017)와 <사피엔스>의 그래픽 버전인 <사피엔스 그래픽 히스토리>(김영사, 2020), 대니얼 리버먼의 <우리 몸 연대기>(2018, 웅진지식하우스), 데이비드 라이크의 <믹스처>(동녘사이언스, 2020), <다윈 평전>(2009, 뿌리와이파리) 등 연구의 중요한 흐름을 보여주면서도 대중적으로 잘 읽히는 굵직한 과학서들을 꾸준히 옮겨왔다. <이기적 유전자>로 유명한 리처드 도킨스의 무신론자적 면모를 보여주는 <신 없음의 과학>(2019, 김영사)과 <신, 만들어진 위험>(2021, 김영사), 그리고 ‘가장 대중적인 과학 저술가’라는 타이틀에 걸맞지 않게 까다로운 에세이집 <리처드 도킨스의 영혼이 숨 쉬는 과학>(2021, 김영사)까지 노학자의 자취를 ‘팬심’으로 따라잡은 이력도 만만치 않다.

“록펠러재단이 제정한 ‘루이스 토머스상’은 첫 수상자가 ‘시인의 경지에 이른 과학자’라고 불렸던 루이스 토머스(대표작 <세포의 삶>)여서 그 이름을 땄어요. 문학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만큼 우수한 과학 저술에 수여하는 상인데, 리처드 도킨스도 수상자 가운데 하나예요.”

김명주 번역가가 볼 때, 과학서 번역의 어려운 점은 전문 용어가 많이 등장해서가 아니다. “현대과학의 연구 분야는 워낙 세분화돼 있어 심지어 같은 생물학 연구를 바로 옆 연구실에서 한다고 해도 서로 내용을 모르는 경우가 많고 과학기술의 변화와 발전의 속도가 워낙 빠르기 때문에” 번역자는 관련 저서나 논문을 살펴보며 공부를 한다. 따라서 ‘전문 용어’를 몰라 헤매는 일은 없다. 오히려 그는 “지나치게 많이 아는 저자가 대중을 미처 생각지 못하고 내용을 성큼 건너뛰어 서술한 문장이나 단락을 만날 때” 고민스럽다. 풀어쓰는 데는 한계가 있고, 덧붙여 쓰면 원서를 왜곡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리처드 도킨스의 책 같이 “과학과 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과학서 읽기를 좋아하고, 그런 책이 자신에게 오기를 기다린다.

그런 과학서를 읽을 때면, 김명주 번역가는 ‘독서멍’을 체험한다. “모닥불을 보면서 멍하니 아무 생각 없는 상태를 ‘불멍’이라고 하잖아요. 만약 우리가 우주에서 지구를 본다면 낯설고 신비한 광경에 ‘지구멍’이 되겠죠. 40억년 전 진화의 역사를 다룬 책을 보면 현재의 삶을 엄청나게 ‘줌 아웃’해서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그 까마득히 유구한 역사 속에서 우리 생이 찰나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멍해지는 건데, 그렇다고 하찮고 의미 없다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그토록 짧게 빛나는 생이기에, 안타깝고 아름답죠.”

<세상을 바꾼 길들임의 역사>(앨리스 로버츠, 푸른숲, 2019)
개, 밀, 소, 옥수수, 감자, 닭, 쌀, 말, 사과, 그리고 인류까지 총 열 개의 종을 ‘길들임’이라는 열쇠 말로 들여다본 책. 야생의 종들이 길들여져 확산하고 번성하는 과정을 통해 인류를 포함한 지구상의 생명체가 공생하고 협력하는 관계임을 일깨운다.

리처드 도킨스의 책 3권(리처드 도킨스, 김영사)
<이기적 유전자>로 유명한 리처드 도킨스의 다른 면모를 알고 싶다면 무신론자 4인의 대담인 <신 없음의 과학>(2019)과 <신, 만들어진 위험>(2021)을, 도킨스의 팬이라면 심화 버전 에세이집 <리처드 도킨스의 영혼이 숨 쉬는 과학>(2021)을 권한다.

<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닐 슈빈, 부키, 2022)
스반테 페보의 <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가 흥미로웠다면, “진화연구에 분자생물학을 적용하는 최신 연구 흐름을 보여주는 닐 슈빈의 신작”을 놓치지 말자. 진화의 역사는 40억 년간 숱한 시행착오와 표절이 난무한 발명의 역사임을 보여준다.

<사피엔스 그래픽 히스토리 vol.1·2>(유발 하라리 원저, 김영사, 2020)
유발 하라리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조현욱 옮김, 김영사, 2015)의 그래픽노블 버전. 호모 사피엔스가 세상의 지배자가 되기까지 과정을 다룬 원작의 핵심을,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보다 쉽고 흥미진진하게 전한다.

글·사진 이미경 자유기고가 nanazaraza@gmail.com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감탄만 나오는 1000년 단풍길…2만그루 ‘꽃단풍’ 피우는 이곳 1.

감탄만 나오는 1000년 단풍길…2만그루 ‘꽃단풍’ 피우는 이곳

교보문고에 ‘한강 책’ 반품하는 동네서점 “주문 안 받을 땐 언제고…” 2.

교보문고에 ‘한강 책’ 반품하는 동네서점 “주문 안 받을 땐 언제고…”

김수미 추모하며…‘일용 엄니’ 다시 방송에서 만납니다 3.

김수미 추모하며…‘일용 엄니’ 다시 방송에서 만납니다

김수미가 그렸던 마지막…“헌화 뒤 웃을 수 있는 영정사진” 4.

김수미가 그렸던 마지막…“헌화 뒤 웃을 수 있는 영정사진”

셰프들도 김수미 추모…“음식 나누고 베푼 요리 연구가” 5.

셰프들도 김수미 추모…“음식 나누고 베푼 요리 연구가”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