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쇠똥구리. 게티이미지뱅크

마틴 스티븐스 지음, 김정은 옮김 l 반니 l 1만9000원 스스로를 지구상 최고의 존재로 여기지만 적어도 ‘감각’만 놓고 봤을 때 인간은 동물에 견줘 한없이 부족하다. 뛰어난 시각·청각·후각 등을 가진 동물의 감각에 비해 어정쩡한 감각을 가진 인류는 동물의 감각에 의지하고, 표절도 수시로 했다. 폭발물이나 지뢰를 찾기 위해 개나 아프리카 도깨비 쥐의 후각에 의지하고, 수중 음파탐지 기술 개발은 박쥐나 돌고래에서 영감을 얻는다. <은밀하고 거대한 감각의 세계>는 동물들의 다양한 감각을 현미경을 대고 들여다보는 책이다. 영국 엑서터대학교에서 감각·진화생태학 교수로 있는 저자는 청각·시각·촉각·후각 등으로 범주를 나눠 동물의 감각을 독자들에게 친절하게 소개한다. 인간이 내뿜는 이산화탄소를 감지하고 시각으로 공격 대상의 형체를 확인한 뒤 20㎝ 이내로 접근하면 열 감각을 이용해 혈관을 찾는 이집트숲모기, 소리의 강도와 시간차를 뇌가 종합해 ‘청각 지도’를 그린 뒤 먹잇감을 향해 돌진하는 가면올빼미 등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아프리카쇠똥구리는 남아프리카 밤하늘의 은하수 별빛을 인지해 ‘나침반’으로 삼는다. 반짝이는 별빛을 따라 둥글게 빚은 덩어리를 굴리며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쇠똥구리의 모습은 ‘고독한 여행자’를 연상케 한다. 이러한 감각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진화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저자는 인간 사회의 진화가 동물의 감각을 계속 교란하며 해를 끼치고 있다고 경고한다. 형광등은 끊임없이 점멸하며 빛을 내는데 인간의 감각은 이를 느끼지 못하지만, 새에겐 나이트클럽의 현란한 조명이나 마찬가지다. 오래 노출될수록 스트레스가 올라가고 몸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 선박소음은 범고래나 꽃게에게 스트레스를 준다. 해변에 식당·카페가 늘어 빛 공해가 심해질수록 바다거북은 방향감각을 상실한다. 저자는 “우리가 지구를 철저히 망가뜨리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라고 비관하지만, 과학을 넘어 사회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2000년 한 해 동안 무려 25만 마리의 바다거북이 물고기를 잡으려는 그물에 의도치 않게 걸렸다고 한다. 연구자들은 물고기와 달리 자외선을 인지하는 거북의 특성에 착안해 그물에 자외선 발광다이오드(LED)를 부착하는 실험을 했는데 포획되는 거북의 수가 40% 줄어드는 결과를 얻었다. 이를 어업에 적용한다면 인간의 감각과 동물의 감각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과학이 문제의 해법을 찾고, 사회가 여기에 동참한다면 현실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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