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읽는 데이터 지리학
제임스 체셔·올리버 우버티 지음, 송예슬 옮김 l 윌북 l 2만8000원 지도는 근대와 함께 명멸했다. 민족국가 개념이 서면서 그 제작과 활용이 활발해졌고, 특히 제국주의 국가들은 식민지개척 때 지도 제작이 필수였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며 종이지도(지도책)는 급속하게 설 자리를 잃었다. 10~20년 전만 해도 웬만한 승용차엔 두툼한 전국도로지도가 상비약처럼 갖춰져 있었지만, 이젠 내비게이션이 그 역할을 하듯이. 지리 정보와 지도 제작을 전공한 대학교수와 ‘내셔널 지오그래픽’ 수석 디자인편집자가 펴낸 <눈에 보이지 않는 지도책>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업그레이드한 지도를 보여준다. 지형지물을 바탕으로 위치와 방향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각종 빅데이터를 조합해 세상의 흐름과 상황을 한눈에 보여준다. 16~19세기 유럽의 대서양 항해 기록 3만6000건을 취합해 서부 아프리카 노예선에 실린 1250만명이 아메리카 대륙 어디에 내려졌는지 하나의 그림(그래픽)으로 보여주는 식이다. 참고로 노예 1070만명 하선지는 브라질이 490만명으로 가장 많았고, 영국령(자메이카·바베이도스, 232만명), 스페인령(쿠바, 129만명), 프랑스령(아이티, 112만명) 순이었다. 미국은 39만명에 불과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노예무역의 실상을 지도 한 장에 담아 보여준 셈이다. 디엔에이(DNA) 분석을 통한 옛 인류의 이주 흐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성과 이름(작명 문화), 이산화질소 농도 분포(어느 나라가 배기가스를 많이 배출하나), 나라별 남녀 하루 평균 유·무급 노동시간 등등을 지도로 보노라면 평소 몰랐던 세상에 눈을 뜨면서 지면을 통한 눈 호강이란 게 뭔지 실감하게 된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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