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현종 지음 l 문학과지성사 l 1만2000원 “우리가 사는 이 터전/ 말도 안 되는 일이 하도 많아/ 강세 ‘어휴’가 오고,/ 아침이 오고,/ 강세 ‘에이’가 오고,/ 지상의 어떤 나라/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 밑에서/ 피범벅이 된/ 다섯 살 아이 옴란 다크니시가 오고,/ 구역질이 오고,/ 한숨이 이 행성을 덮고,/ 눈물이 어디선가 발원하여/ 강을 이루고,/ 아침이 오고,”(‘어디선가 눈물은 발원하여’ 부분) 1965년 등단한 뒤 지치지 않고 자신의 시 세계를 갱신해온 정현종 시인(83)이 7년 만에 새 시집을 내놨다. 노시인은 세상을 둘러싼 슬픔과 “모든 떠남과 돌아옴의 슬픔/ 기억과 망각/ 피로와 체념의 슬픔”(‘걸음걸음마다 슬픔이’)을 노래한다. 동시에 “벌써 삼월이고/ 벌써 구월이다// 슬퍼하지 말 것.// 책 한장이 넘어가고/ 술 한잔이 넘어갔다.// 목메지 말것.// 노래하고 노래할 것.”(‘벌써 삼월이고’ 전문)을 다짐한다. ‘이른 봄’이 되면 “겨우내 차갑던 돌은/ 스멀거리는 것들과 함께/ 다시 자라며 노래”(‘이른 봄’)할 것이고 “사월 초순/ 공원 습지를 지나며/… / 꾸와악, 꾸와왁, 꾸와왁/ 천지에 기쁨이 넘치”(‘개구리들의 합창이여’)는 개구리들의 합창을 들을 수 있을 테니. 슬픔과 기쁨이 한데서 만나고 “마음이 녹아들지 않으면/ 세계는 잿더미요/ 삶은 쓰레기 더미이다.”(‘녹아들다’) 시인은 책의 막바지에 이르러 이렇게 노래한다. “괴로움을 견디느라 괴로움과 놀고/ 슬픔을 견디느라 슬픔과 놀고/ 그러다가/ 노는 것도 싫어지면/ 싫증하고 놀고……”(‘놀다’ 전문) 이는 시인이 온몸으로 녹아들어가려는 “삶의 전부인 저/ 진실의 순간”(’녹아들다’)일 것이다.

정현종 시인.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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