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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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 지음 l 민음사 l 1만5000원 믿고 읽는 작가 김혜진(사진)의 신작 <경청>은 말하기와 듣기에 관한 소설이다. 잘나가던 삼십 대 후반의 심리 상담 전문가 해수가 방송에서 한 말 때문에 한순간에 나락으로 굴러떨어진다. 어느 배우의 행태를 비판하는 대본을 생각 없이 읽었다가 그 배우를 죽음으로 내몬 가해자로 지목된 것. 그의 무분별한 발언을 비판하는 기사가 나오고, 험악한 말들이 인터넷 공간을 뒤발하며, 회사에서는 해고되고, 단골 음식점에서마저 박대를 당한다. 이른바 ‘취소 문화’(캔슬 컬처)의 대상이 된 것이다. 상황을 뒤집고자 해수는 끊임없이 편지를 쓴다. 처음 기사를 썼던 기자를 향해, 사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의가 틀어진 친구를 향해, 죽은 배우의 부인을 향해, 자신을 내친 회사 대표를 향해, 문제의 사건과 비슷한 무렵에 갈라선 전 남편을 향해…. 그러나 그 편지들은 하나같이 끝을 맺지 못하고, 남들의 눈을 피하느라 어둑한 저녁 무렵에 나선 산책길에 찢긴 채 쓰레기통 속에 버려진다. 직업 특성상 말에 관해서라면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던 해수는 바로 그 말이 낳고 키운 덫에 걸려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처지가 된다. “그리고 그녀는 깨닫는다. 자신은 그저 넘쳐 나는 말들에 둘러싸여, 불필요한 말들을 함부로 낭비하는 인간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자신이 한 말이 언제 탄생하고 어떻게 살다가 어디에서 죽음을 맞이하는지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이런 해수의 자책과 반성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글을 쓰고 말을 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이들은 물론 소통과 관계 유지를 위해 말과 글을 내뱉는 이들 가운데 자신의 말과 글이 지닌 무게를 엄정하게 헤아리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해수의 편지들이 그를 여전히 말의 감옥에 가두어 놓는다면, 그가 산책길에서 마주친 다친 길고양이 순무와 순무를 돌보는 아이 세이와 나누는 교감은 그를 비로소 그 감옥에서 끄집어내게 된다.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세이와 깊은 상처를 지닌 순무는 어쩐지 해수와 닮은꼴인데, 해수가 세이의 이야기를 청해 듣는 장면에서 두 사람이 주고받는 말에 이 작품의 주제가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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