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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립한국문학관장 문정희 시인 ‘셀프 수상’ 논란

등록 2022-11-08 13:47수정 2022-11-08 21:45

자신이 운영위원인 문학상 수상
문정희 시인. <한겨레> 자료사진
문정희 시인. <한겨레> 자료사진

국립한국문학관장인 문정희 시인이 자신이 운영위원으로 있던 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문학평론가이자 <구상 평전>의 지은이인 이숭원 서울여대 명예교수는 8일 <한겨레>와 만나 “문정희 시인이 자신이 운영위원으로 있던 구상문학상의 수상자로 결정되었다”며 “문학상 운영위원이 해당 문학상 수상자가 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일반적 관례와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며 문학상 운영에 잘못된 선례를 남기는 일이니 철회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와 관련 인사들에 따르면 구상문학상 심사위원회(김종해·유자효·장옥관·정끝별·유성호)는 지난달 28일 회의를 열고 문정희 시인의 시집 <오늘은 좀 추운 사랑도 좋아>(민음사)를 제14회 구상문학상 수상작으로 뽑았다. 상금은 5천만원이다.

구상문학상은 지난 2년간 나온 시집들을 심사 대상으로 삼으며 운영위원들과 심사위원들이 각자 2권씩 낸 추천작들을 가지고 논의를 거쳐 수상작을 결정한다. 구상문학상 운영위원회는 유자효 구상선생기념사업회장과 유족인 소설가 구자명씨, 문정희 시인, 이숭원 교수, 배봉한 사무총장 등 5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숭원 교수는 올해 심사 대상작 추천에서 운영위원인 문정희 시인의 작품이 오르자 그에 강한 문제 제기를 했고, 이에 문정희 시인은 심사를 앞두고 운영위원직에서 물러났다. 유 회장은 8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구상문학상 운영 규정에 운영위원은 심사 대상에서 배제한다는 규정은 없기 때문에 문정희 시인의 작품이 심사 대상이 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심사위원회에도 그런 사실을 알렸고, 따라서 문정희 시인을 수상자로 정하는 데에 하등 절차상의 하자는 없었다”고 밝혔다. 유 회장은 “문학상 운영위원이라고 해서 해당 문학상 수상자가 되지 못한다면 그건 오히려 역차별의 요인도 있는 것”이라면서도 “이숭원 교수 등의 문제 제기에 일리가 있다고 판단해서 유족이자 운영위원인 구자명씨와 합의해서 운영위원을 심사 대상에서 배제한다는 조항을 운영 규정에 새로 넣었다”고 설명했다.

심사를 맡았던 문학평론가 유성호 한양대 교수도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심사위원들은 운영위원의 작품을 심사 대상으로 할지에 대해 결정할 권한이 없다. 운영위원회 쪽에서 상관이 없다고 하셨기에 공정한 심사를 거쳐서 수상작을 결정한 것이다. 뒤늦게 문제가 됐다고 해서 심사 결과를 바꿀 수는 없다. 다만 나중에라도 해명해야 할 것은 있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심사위원장을 맡은 김종해 시인이 전년도 구상문학상 수상자였으며 그해 심사에 문정희 시인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는 사실도 구설에 올랐다. 이숭원 교수는 “김종해 시인은 문정희 시인이 심사한 전년도 수상자인데 금년도 심사위원장으로 참여하여 문정희 시인을 수상자로 선정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특히 김종해 시인과 문정희 시인, 유자효 회장이 모두 한국시인협회 전임 및 현 회장이라는 사실은 한국시인협회의 불공정한 연결 고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이숭원 교수는 구상문학상 심사 결과가 나온 뒤 운영위원직을 사퇴했다.

수상작인 문정희 시집 발간일이 올해 8월26일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 출간된 것은 9월이라는 사실도 도마에 올랐다. 구상문학상이 통상 해당 연도 8월 말 이전 2년간 출간 시집을 심사 대상으로 삼는다는 사실을 고려해 출간 날짜를 바꾸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유자효 회장은 “8월 말 이전 출간이라는 시점은 큰 의미가 없다. 심사일 전까지 출간된 시집은 거의 다 후보로 받아서 검토했다”고 설명했다.

이숭원 교수는 “<구상 평전>을 쓰면서 많이 울었다. 구상 선생님이 어떻게 사신 분인데, 그분의 이름을 딴 상이 이렇게 추문과 결탁으로 망가질 수가 있나. 상을 주관하는 영등포구청은 이제라도 결정을 재고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강인한 시인이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 ‘푸른 시의 방’을 중심으로 한 온라인 공간에서는 문정희 시인의 구상문학상 수상자 결정 사실을 비판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구상 시인은 생전에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시범아파트에서 오래 살았고, 여의도 한강공원에는 시비도 세워져 있다. 구상 시인이 2004년 별세한 뒤 영등포구는 구상문학상을 제정해 2009년부터 시상하고 있다. 구상문학상 수상자는 통상 11월 말에 발표된다.

한편 문정희 시인은 지난달 6일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국립한국문학관 관장으로 임명되었다. 임기는 2025년 10월까지 3년이다.

<한겨레>는 제14회 구상문학상 수상자 결정과 관련해 8일 문정희 시인에게 전화와 문자로 연락을 취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구상 시인 따님인 구자명 소설가는 이날 <한겨레>에 문자를 보내 “구상선생기념사업회의 공식 입장이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 영등포구청과 운영위원회를 연 다음 공식 입장을 밝히겠다”고 알려왔다.

이와 관련해 엄대용 영등포구 홍보미디어과 주무관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구상문학상 수상자는 구상문학상 운영위원회가 심사 결과를 구청장이 위원장으로 있는 구상시인기념사업 운영위원회(구상문학상 운영위원 5명, 구청장, 구 행정국장, 구의원 1명 등 총 8명)에 통보해오면 그에 따라 가부간에 결정을 하게 되어 있는데, 아직 통보가 안 왔다. 따라서 문정희 시인의 수상은 아직 최종 결정된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엄 주무관은 "구상문학상이 지난해 13회까지 운영되면서 심사위원회의 수상자 결정을 최종적으로 물리치거나 뒤바꾼 사례는 한 번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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