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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생각] 과거로부터 온 구원의 신호 ‘그대, 모두를 잃었는가’

등록 2022-11-18 05:00수정 2022-11-18 09:40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프루스트의 역작 ‘정석’ 완역
민음사·김희영, 10년 대장정

“나 자신의 번역 용기없다”던
작가, ‘기억’으로 강구하는 희망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되찾은 시간 1·2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l 민음사 l 1만5000원·1만6000원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1871~1922)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국내 더 대중화(?)되는 데 일본영화 <러브레터>도 한몫한다. 잠시만 회상.

영화에서 소년은 책에 ‘러브레터’(도서카드에 그린 소녀의 초상)를 꽂아 마음을 전하는데 여성은 ‘10년’이 지난 뒤에야 ‘우연히’ 사정을 알고 제 소녀적 초상을 보게 되고, 남성은 이미 죽고 없었으나, 그 시절이 사랑임을 그로 전율되어 지금 충만해짐을 느낀다.

그 책이 바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다. 다만 이 진술은 절반만 맞다. 더 정확히는 연작소설인 <잃어버린…>의 마지막 편인 ‘되찾은 시간’이다. 지난 기억으로부터 현재의 구원이 구해지는 소설의 함의 하나를 교차시키자면, ‘현재’가 ‘과거’에 외쳐댄 “오겡끼데스까”(‘잘 지내나요’ 뜻의 <러브레터> 명대사)는 기실 과거가 현재에 “오랜 시간”(전체 소설의 첫 단어) 외쳤었던―그러나 들리지는 않던―말이 마침내 되찾은 메아리라 해도 억지스럽지 않다.

민음사가 이달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되찾은 시간’ 편을 번역 출간(1·2권으로 구성)하며, 전체 일곱 편에 걸쳐 2399쪽 102만 단어로 짜인 원서와의 지적·미학적 싱크로율을 역대 최대치로 끌어올린 완역 기획의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1950년대 판본에 기거한 기존 번역서와 달리, 1987년 치 프랑스 플레이아드 전집을 국내선 처음 저본 삼아 1편 ‘스완네 집 쪽으로’(1·2권)를 펴낸 게 2012년이니, ‘러브레터’가 되찾아지기까지의 시간처럼 꼬박 10년 만의 완간이고, 실제 14년 동안 이 작품에만 헌신했던 프루스트의 사후 100주년과도 마침 만났다.

해당 번역을 완수해낸 이가 국내 대표적 ‘프루스트 전공자’인 김희영 한국외대 명예교수다. ‘의식의 흐름’에 따른 “가지치기와 은유”로 “길고 난해한” 문장을 직역 위주로 스스로를 절제하여 “원문의 떨림을 전달하는 데” 주력한 번역가는, 대신 문학과 예술, 건축, 역사, 종교, 전쟁 및 계급 충돌과 같은 프랑스 유럽의 시대상 등을 지극히 세밀하고 광활히 망라한 원저의 “올바른 수용을 위해” 학자로서 적극 개입(주석과 각 편마다의 해설)하여 독자 본위의 정확성과 가독성을 높이고자 했다(2012년, ‘옮긴이의 말’).

‘스완네 집 쪽으로’(1913)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1919) ‘게르망트 쪽’(1920) ‘소돔과 고모라’(1922) ‘갇힌 여인’(1923) ‘사라진 알베르틴’(1925) ‘되찾은 시간’(1927) 순의 일곱 편은 이로써 모두 13권이 되어 국내 독자와 만난다.

프루스트는 당초 ‘스완네…’ ‘게르망트 쪽’ ‘되찾은 시간’ 셋으로 틀거지를 짰으나, 1차대전을 겪으며 고쳐 늘이고 또 고치다―‘갇힌 여인’을 교정 중이던―1922년 생을 마치며 더는 고칠 수 없어 ‘마감’된 형태가 지금의 7편이다. 사후 출간된 세 편은 미완인 셈이다.

장대히 확장된 소설을 역으로 추리자면, ‘자신의 가치와 진실, 꿈이 붕괴되었으나, 우연히 잊었던 기억과 영혼을 되찾고, 예술로서 망각과 죽음의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는 소명의 작가가 되는 마르셀’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졸가리는 하나 마나 한 것이다.

마르셀 프루스트. 민음사 제공
마르셀 프루스트. 민음사 제공

프루스트의 펜끝은 가시적 사건과 사물의 세세할지언정 단순한 ‘나열’을 넘어, 이들로 인한 비가시적 파장과 인상까지의 내밀한 ‘번역’을 좇았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죽음(1905년) 뒤 지인에게 썼던 “엄마가 날 도와주던 번역의 시대는 이제 영원히 끝났다. 하지만 나 자신의 번역에 대해서는 아직 용기가 없다”는 고백을 스스로 깨친 단계일 텐데, 마침내 이 소설에 투신한 1909년부터, 예를 들어 늘 허기졌던 어머니의 굿나잇 키스, 두 차례 일방의 사랑과 한 차례 미완의 사랑, 욕망했던 사교장의 허상, 오만한 전통 귀족, 미욱한 신흥 부르주아, 드레퓌스 사건과 1차대전 등 사실상 제 생애 전체를 그와 같이 풀어낸 격이다. 작가는 이러한 내·외적 ‘번역’을 “존재가 가진 표면적이고 복사할 수 있는 매력은 나로부터 빠져나갔”기에 “그들의 엑스레이를 찍고 있”(‘되찾은 시간’)음으로 가능케 했고, 김희영 교수는 이 결과를 “총체적 리얼리즘”으로 아우른다.

시간은 무엇으로 되찾아지는가, 이제 그 전설의 대목을 (되)짚어볼 때다. ‘프루스트 순간’이라 부를 법한 ‘프루스트 효과’. 주름진 프디트 마들렌 조각이 녹아든 홍차 한 모금이 입천장에 닿음으로 지난 기억들이 펼쳐지는 아주 길고 긴 찰나 말이다. 하지만 소실된 듯 접혀버린 시간이 뜻밖으로 펼쳐지는 원리는 직전의 대목에 담겨 있다. 한 문장을 평균 36개 단어로, 최대 장문은 931개로까지 직조한 그답게 긴 문장이다.

“…내가 기억해낼 수 있는 것은 단지 의지적인 기억, 지성의 기억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 이런 기억이 과거에 대해 주는 지식은 과거의 그 어떤 것도 보존하지 않으므로…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다 그날이 오면 영혼은 전율하고 우리를 부르며, 우리가 그것을 알아보는 순간 마법이 풀린다고 한다. 우리 덕분에 해방된 영혼은 죽음을 정복하고, 우리와 더불어 살기 위해 돌아온다.”(‘스완네 집 쪽으로’)

이 문장들은 이른바 ‘비의지적 기억’에 대한 예고이고, 이윽고 마들렌에 의한 우연한 전율, 이후 반복되는 종소리에 의한 기억의 펼쳐짐이 증거다.

문제는 시간의 흐름이 감각의 흐름과 일치할 리 없고 선형적일 수도 없으므로 읽는 이로선 부담이란 점이다. 1962년 저작권을 사들인 이가 감독 트뤼포 등에게 수없이 영화화를 제안, 시도하나 무산되다 1984년에야 겨우 <스완의 사랑>이 나온 것과 비슷하다.

일곱 편으로 구성된 연작소설 &lt;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gt;를 민음사가 2012~22년 10년에 걸쳐 완역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i.co.kr
일곱 편으로 구성된 연작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민음사가 2012~22년 10년에 걸쳐 완역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i.co.kr

꼭 그래서 출간된 건 아니겠으나 이번 함께 나온 <프루스트 그래픽>은 그래서 도움될 만하다. 작중 인물별 특징, 이들의 이성·동성애를 오가는 연애도, 프루스트가 읽은 책들 등이 인포그래픽으로 갈무리된다. 병약하여 스스로 죽음도 예비했던 프루스트가 “문학사 통틀어 가장 심각한 마약 중독자 중 하나”였다는 사실도 굳이 감출 일은 아니다.

“…현재 내가 있는 곳에 대한 추억이 아니라, 내가 살았던 곳, 혹은 내가 살았을지도 모르는 곳에 대한 추억이 저 높은 곳에서부터 구원처럼 다가와 도저히 내가 혼자서는 빠져나갈 수 없는 허무로부터 나를 구해 주었다”는 첫 편의 회고와 “이따금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를 구원하는 신호가 온다… 그리하여 문이 열린다”는 마지막 편의 예언 사이 책은 저마다에게 들려온 메아리는 무엇인지 물을 뿐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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