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거리
독일의 복잡계 과학·전염병 모델링 전문가 디르크 브로크만이 쓴 책 <자연은 협력한다>(알레)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자연과 사회 현상을 규명하려는 복잡계 과학의 노력을 소개합니다. 테마 가운데 하나는 ‘집단행동’으로, 지은이는 새나 물고기 떼 같은 자연 속 움직임뿐 아니라 대규모 압사 등 비극적인 결과를 낳곤 하는 사회 속 인간의 집단행동도 함께 살핍니다. 독일 물리학자 디르크 헬빙은 시뮬레이션 연구를 통해 보행자들의 밀도가 어떤 임계점을 넘으면 군중이 무질서한 액체처럼 움직이면서 강력하고 불안정한 압력을 일으킨다는 ‘군중 난류’ 이론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지은이는 헬빙이 만든 모델이 “상황이 임계점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예측 정보를 전달”하기에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보행자 밀도가 임계점에 도달하기 전에 손을 쓰면 군중 난류의 발생 자체를 막을 수 있다는 거죠. 그러면서 “대규모 군중을 제어할 때는 도무지 가능하리라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희한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를테면 비상구로 대피 인원이 몰릴 경우, 비상구 앞에 기둥이나 벽 하나만 세워도 군중이 두 갈래로 나뉘어 대피 속도가 빨라지므로 군중 난류가 형성될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다고 합니다.
최근 정부가 ‘이태원 참사’의 재발을 막기 위해 인공지능과 지능형 폐쇄회로텔레비전, 드론 같은 첨단 디지털 기술들을 활용하겠다고 발표한 내용을 듣고 기가 막혔습니다. 과연 이 참사가 그런 기술들이 없어서 벌어졌던 일인가요? 임계점에 도달하기 전인 저녁 6시께부터 시민들의 신고로 끊임없이 경보는 울렸건만, 국가로부터 아무런 응답이 없던 것이 핵심 문제 아니던가요. 책임지지 않는 정치권력을 연구하는 복잡계 과학은 어디 없을까요?
최원형 책지성팀장

지난 1일 오후 시민들이 `이태원 참사' 현장 인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출구에서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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