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영·김소영·이길보라·최태규
일상 낱말 16개 소재로 써낸 에세이
같은 낱말에 걸려나온 다른 장면들
장애·어린이·동물 자연스레 이입
일상 낱말 16개 소재로 써낸 에세이
같은 낱말에 걸려나온 다른 장면들
장애·어린이·동물 자연스레 이입
닮은 듯 다른 우리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열여섯 가지 단어
김원영·김소영·이길보라·최태규 지음 l 사계절 l 1만8000원 ‘제시어’에 대해 글을 쓰는 경험이 점점 더 희귀해져 간다. 전교생이 동일한 제시어로 글을 써내던 백일장의 시대가 저물고, 특정 키워드로 작문을 써내는 입사 시험도 드물어졌다.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이조차 타인으로부터 일방적으로 ‘주어진’ 제시어보다는 스스로 ‘선택한’ 소재나 주제에 대해 쓰려 한다. ‘제시어’는 이제 타율로 점철된 구시대의 상징이 된 것만 같다. <일상의 낱말들>은 반대다. 2주마다 한 번씩 작가 4인에게 낯설지 않은 낱말이 당도한다. 커피, 양말, 아침, 책, 텔레비전, 게으름, 기다림, 서늘함, 안녕…. 모두 16개 단어다. 이 닳고 닳은 낱말들을 전달받은 작가들은 이 낱말을 뒤집고, 헤집고, 흔들고, 응시한 후 “낱말 끝에 걸려 나온” 각자의 기억을 16편의 글에 담았다. 춤추는 변호사 김원영, 어린이 곁에서 읽고 쓰는 김소영,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드는 이길보라, 동물복지를 공부하는 수의사 최태규. 어쩌다 이들의 마음에 ‘투척’된 낱말들은 이들이 살아온 삶과 화학 반응을 일으키며 저마다 고유한 냄새와 빛깔을 만들어낸다. 첫 제시어는 현대인의 주식 ‘커피’. 김원영은 “배터리를 챙기듯 캔커피를 가방에 넣어 다니던” 대학 시절을 떠올린다. 아메리카노를 손에 들고 은근한 커피 향을 풍기며 우아하게 강의실에 들어서던 학생들. 김원영은 그럴 수 없었다. “휠체어를 타야 해 컵에 넘치기 직전까지 담아주는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들고서 유유자적 거닐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 커피를 든 “똑똑하고 자유로운 학생들”은 김원영에게 그 자체로 각성을 유발하는 카페인이었다고 고백한다. “드드득”. 김소영은 어린이와 처음 만나는 날이면 일부러 수동 그라인더를 꺼내 커피를 내려 마신다. 아이들은 묻는다. “봉지에 들어 있는 커피도 있잖아요. 선생님은 왜 이렇게 힘들게 마셔요?” 기다리던 질문이다. “제가 커피를 내리는 것은 무엇이든 좋아하는 게 있으면 번거로운 과정도 즐겁게 느껴진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입니다. … 퍼즐을 맞추거나 게임 레벨을 올릴 때 어떤 때는 복잡할수록 재밌지 않느냐고요.” 이길보라는 ‘커피’의 수어가 ‘코’(鼻)와 ‘차’(茶)로 이루어지게 된 연원을 추측하면서 “수화언어로 세상을 바라보면 기존의 세계는 해체되고 재구성된다. …(수어를 통역하는 일은) 미지의 이야기를 캐내는 과정”이라고 썼다. 최태규는 우후죽순 생기는 동물 카페를 보며 “사람이 커피를 마시며 머물 만하다고 해서 야생동물이 살 만한 공간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조곤조곤 설명한다.
ⓒ이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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