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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생각] 그림책에 매혹된 이유? 빛나는 희망과 따뜻한 위로!

등록 2022-11-18 05:01수정 2022-11-18 17:33

번역가를 찾아서│엄혜숙 번역가

그림책 외길 걷는 엄혜숙 번역가
그림책이 일·밥·취향·특기…

내용 이해한 뒤 ‘화법’까지 고민해야
“우중충한 현실에 위로 주는 그림책”

그림책 번역가이자 어린이책 작가인 엄혜숙 씨를 지난 11월13일, 그가 자주 찾는 고양시립화정도서관에서 만났다.
그림책 번역가이자 어린이책 작가인 엄혜숙 씨를 지난 11월13일, 그가 자주 찾는 고양시립화정도서관에서 만났다.

서양의 그림책 역사는 100년, 우리나라는 30년쯤 된다. 그러니 1990년대 이전에 아동‧청소년기를 보낸 사람은 그림책을 구경도 못 하고 컸다. 엄혜숙 번역가도 그랬다. 1987년 웅진씽크빅 출판사에 입사해 유아잡지를 만들면서 자료실에 참고서적으로 비치돼 있던 외국 그림책을 보기 전까지는.

“깜짝 놀랐어요. 글 읽기가 서툰 아이들을 위해 드문드문 ‘삽화’가 포함된 동화책도 귀한데, 그림이 글과 나란히, 어쩌면 글보다 그림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책이라니요. 게다가 그림 한 장 한 장이 얼마나 개성 있고 아름답던지, 마치 예술작품을 보는 듯했어요. 존 버닝햄, 모리스 샌닥, 아놀드 로벨…. 기라성 같은 그림책 작가들의 작품에 빠져들었고, 시간이 날 때마다 우리말로 옮겨 파일을 만들었죠.”

유아잡지 편집팀 동료들과 그림책 공부모임을 꾸렸다. 편집자, 출판디자이너, 사진작가 등 분야가 서로 다른 이들이 저마다의 시각으로 그림책을 읽으니 혼자 읽을 때보다 훨씬 풍성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중엔 출판사를 그만두고 우리보다 그림책 문화가 앞선 일본으로 ‘그림책 유학’을 다녀왔다. 대학에서 독문학을, 대학원에선 국문학을 전공한 엄혜숙 번역가가 그간 영어‧독일어‧일본어 그림책을 두루 옮긴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꾸준히 이탈리아어를 독학해, 지난해부턴 이탈리아어 그림책 번역도 하고 있다.

1995년 어린이책 출판사인 비룡소에서 편집자로 있던 엄혜숙 번역가는 “우리도 이런 창작 읽기 책을 한번 만들어보면 어때요?”라며 가장 좋아하는 작품인 ‘개구리와 두꺼비’ 시리즈(아놀드 로벨, 비룡소, 1996)를 소개했다가 그 책의 번역을 맡았다. 그보다 늦게 번역했으나 같은 해 먼저 출간된 <깃털 없는 기러기 보르카>(존 버닝햄, 비룡소, 1996)가 그의 출판 데뷔작이다. 이후 25년간 600여 권의 해외 그림책과 어린이책을 우리 독자들에게 소개했다. 이처럼 방대한 작업량에 대해 그는 “어린이책은 글의 분량이 적고 문장이 복잡하지 않아 어른 책에 비해 번역이 빠르고 수월하다”고 설명했는데, 물론 지극한 겸양의 말이다. 그간 ‘번역가를 찾아서’를 통해 만난 번역가들은 한결같이 “어린이책 번역은 어른 책과는 또 다른 재능과 역량이 필요한 전문영역”이라고 입을 모았던 것이다. 그림책 번역은 대체 어떻게 하는 걸까?

그림책 번역가이자 어린이책 작가인 엄혜숙 씨를 지난 11월13일, 그가 자주 찾는 고양시립화정도서관에서 만났다.
그림책 번역가이자 어린이책 작가인 엄혜숙 씨를 지난 11월13일, 그가 자주 찾는 고양시립화정도서관에서 만났다.

“번역 전 워밍업이 필요해요. 그림책을 여러 번 읽으면서 내용을 충분히 이해한 후 화법(어투)을 결정합니다. 우리말은 화법에 따라 느낌이 매우 달라지기 때문에, 작가가 표현하려는 의도를 가장 잘 드러내는 화법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래서 <평화 책>(토드 파, 평화를품은책, 2016) 같은 경우는 작가가 독자에게 직접 말을 건네는 것처럼 반말로 옮겼어요. 국내에 다른 작품이 여러 권 출간된 작가라면 이전 책들을 읽어보며 작가의 특징과 작품세계를 살펴봐요. 작품에 대한 이해가 깊을수록 더 자유롭고 풍부한 번역이 가능해져요.”

같은 놀람의 표현이라도 ‘아이쿠’와 ‘어머나’는 또 얼마나 다른가. ‘요즘 어린이 독자들이 쓰는 우리말’의 어감을 고려해 적절한 단어를 선택하는 것 역시 그림책 번역가의 중요한 숙제다. 엄혜숙 번역가는 종종 동네 어린이들이 주고받는 말을 가만히 듣곤 한다. 어린 독자들의 생동감 넘치는 표현을 배우고 수집하는 시간이다.

그는 최근 다비드 칼리와 루크 톰페레가 함께 만든 이탈리아어 그림책 <누구 잘못일까?>와 루 존과 제니 블룸필드의 영어 그림책 <걱정거리를 담는 유리병> 초고를 막 끝냈고, 일본 작가 사노 요코의 유작집 번역을 준비하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그림책 좋아하는 이들과 그림 작가의 화실에 모여 그림을 그리고, 어린이책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 결성한 ‘어린이책 말고 다른 책 읽는 모임’인 ‘본주르 독서회’에도 5년째 참여 중이다. 그림책 칼럼을 쓰고, 그림책 강연을 하고, <두껍아 두껍아>(2000, 국민서관) 등을 집필한 그림책 작가이기도 하다. 그림책은 그의 일이고 밥이며 취향이자 특기다. 왜 그토록 매혹됐을까.

“대학에 입학한 1980년, 어린이책 출판사에 입사한 1987년…. 세상은 온통 회색빛으로 우중충했어요. 그날 출판사 자료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 처음 만난 그림책 세상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죠. 그게 위로가 되었던가 봐요. 내가 번역하는 그림책이 누군가에게 빛나는 희망과 따뜻한 위로가 되었으면 해요. 그림책엔 그런 힘이 있으니까요.”

글·사진 이미경 자유기고가 nanazaraza@gmail.com

‘개구리와 두꺼비’ 시리즈

성격이 다른 두꺼비와 개구리의 우정을 그린 총 4권의 시리즈로, 엄혜숙 번역가의 번역본이 우리나라 초등 교과서에도 수록돼 있다. ‘따로 또 같이’ 사는 게 모토인 엄혜숙 번역가가 꼽는 인생의 책.

글·그림 아놀드 로벨 l 비룡소(1996)

와일드 로봇·와일드 로봇의 탈출

그림책 작가 피터 브라운의 판타지 소설. 무인도에 불시착한 로봇 로즈가 동물의 말을 배우고 기러기를 양자로 입양해 기르며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을 그렸다. “번역하면서 큰 감동을 받았던 작품”이라고.

글·그림 피터 브라운 l 거북이북스(2019)

무지갯빛 세상

어두운 세상에 아름다운 빛과 색을 가져오는 어린이 화가. 알고 보니 혼자가 아니라 여러 아이들이 함께 세상을 채색하고 있었다. “미래의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보여주는 동시에 예술의 의미를 보여주는 그림책.”

글·그림 토네 사토에 l 봄봄(2022)

작가

반려견의 시선으로 본 작가의 사생활. 다비드 칼리 작가 특유의 유머와 재기가 넘치는 이 책은 엄혜숙 번역가의 첫 이탈리아어 번역서다. 2022년 <뉴욕타임스>와 뉴욕공공도서관이 선정한 10대 그림책에 꼽혔다.

글 다비드 칼리, 그림 모니카 바렌고 l 나무말미(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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