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시대를 기억하다
사회적 아픔 너머 희망의 다크 투어리즘
김명식 지음 l 뜨인돌 l 1만8000원
건축가 김명식은 2017년 남영동 대공분실,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세월호 추모공간 같은 건축물이 사회·역사적 아픔을 간직하고 전달하는 양상을 탐구한 책 <건축은 어떻게 아픔을 기억하는가>를 출간해 좋은 반응을 얻은 바 있다. 그가 새로 내놓은 <공간, 시대를 기억하다>는 그 후속편에 해당한다. 이 책에서 지은이는 제주4·3평화공원의 ‘비설’, 오월걸상, 매헌시민의숲 ‘일상의 추념’, 서울로7017의 조형 공간 ‘윤슬’ 같은 시설물을 답사하며 그곳들에 쌓인 기억과 역사의 지층을 발굴하고자 한다. 다만, 전작이 아픈 역사의 기억과 전승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신작은 그것이 일상과 만나는 지점에 좀 더 방점을 찍었다.
제주4·3평화공원의 청동 조형물 ‘비설’(飛雪)은 아기를 안은 채 눈밭에 무릎 꿇은 젊은 어머니의 모습을 담았다. 1949년 1월 토벌대를 피해 달아나다가 총에 맞아 숨진 변병생과 두 살배기 아기를 형상화한 이 조각상이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나 케테 콜비츠의 ‘죽은 아이를 안은 어머니’에 못지않게 애절하고 고귀하다고 지은이는 강조한다.
최근 양재시민의숲에서 매헌시민의숲으로 이름을 바꾼 서울 양재동의 공원 한쪽에 들어선 ‘일상의 추념’은 2011년 우면산·청계산·구룡산 등에서 발생한 산사태로 희생된 이들을 기리고자 2018년에 세워졌다. 흰 대리석 기둥 15개를 3열로 배열하고 윗면을 경사지면서 거칠게 표현한 형태는 희생을 불러온 산사태를 나타낸다. 같은 공원에는 유격백마부대 충혼탑, 대한항공 858편 희생자 위령탑,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희생자 위령탑도 있는데, “20세기 후반 추모의 형태화를 잘 보여주는 앞선 세 개의 추모시설은, 21세기 초의 새로운 시각언어·추상언어의 형태를 제시하는 ‘일상의 추념’의 조형성을 상대적으로 돋보이게” 한다고 지은이는 평가한다.
부산 서면 쌈지공원의 ‘오월걸상’. 김명식 제공
장송곡이나 미사 같은 무겁고 어두운 방식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장소 및 공간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지은이의 생각이다. 기존의 과잉된 추모 방식에서 벗어나 누구나 앉을 수 있는 의자 형태의 기념물로 구상되고 설치된 ‘오월걸상’이 그가 생각하는 방향에 가장 잘 부합한다 하겠다. 책에는 이밖에도 노근리 평화공원, 전태일기념관, 서소문역사공원, 경주타워, 베를린 분서 기념 도서관 등이 시대를 기억하는 공간으로서 함께 소개되어 있다.
서울로7017의 조형 공간 ‘윤슬’의 야경. 김명식 제공
서울 서소문 역사공원에 설치된 티모시 슈말츠의 조각 ‘노숙인 예수’. 김명식 제공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