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 붓꽃
루이즈 글릭 지음, 정은귀 옮김 l 시공사 l 1만3000원
아베르노
이즈 글릭 지음, 정은귀 옮김 l 시공사 l 1만3000원
신실하고 고결한 밤
루이즈 글릭 지음, 정은귀 옮김 l 시공사 l 1만3000원
루이즈 글릭 ⓒ Katherine Wolkoff
202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미국 시인 루이즈 글릭의 대표 시집 세 권이 번역돼 나왔다. 노벨상을 받은 지 2년도 더 지나서야 책이 나왔다는 사실은 옮긴이와 출판사가 그만큼 공력을 들였다는 뜻일 수도 있겠다.
글릭은 노벨상 수상 이전에는 한국 독자들에게는 시 두어 편 정도만 알려졌을 뿐이었지만, 미국에서는 퓰리처상과 전미도서상 등 주요 문학상을 섭렵하다시피 한 대표적인 시인이다. 이번에 번역돼 나온 시집들은 퓰리처상 수상작인 <야생 붓꽃>(1992)과 스웨덴 한림원이 노벨상을 발표하며 특별히 언급한 <아베르노>(2006), 전미도서상 수상작 <신실하고 고결한 밤>(2014) 세 권이다. 글릭의 시 세계 전모를 보여주는 대표작이 망라된 셈이다. 출판사는 이 책들을 필두로 글릭의 작품 전체를 포괄하는 전집을 내놓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내가 살아남을 줄 몰랐어요,/ 대지가 나를 짓눌렀거든요. 내가 다시 깨어날 거라/ 예상하지 못했어요,(…)// 두렵냐고요, 네, 그래도 당신들 속에서 다시/ 외칩니다, 그래요, 기쁨에 모험을 걸어 보자고요,// 새로운 세상의 맵찬 바람 속에서.”
노벨상 수상 이전에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되었던 작품 ‘눈풀꽃’이다. 죽음과도 같은 겨울을 견뎌 내고 새로운 삶을 얻은 눈풀꽃의 신생에의 의지와 환희를 그렸다. 이 작품이 포함된 시집 <야생 붓꽃>은 정원을 배경으로 삼아 그곳에서 자라는 식물과 정원사인 인간 그리고 정원의 생명을 주재하는 신, 이 세 주체의 엇갈리며 교호하는 목소리를 들려준다.
“내 고통의 끝자락에/ 문이 하나 있었어.// (…) // 끔찍해, 어두운 대지에 파묻힌/ 의식으로/ 살아남는다는 건.// (…) // 네게 말하네, 나 다시 말할 수 있을 거라고: 망각에서/ 돌아오는 것은 무엇이든/ 목소리를 찾으러 돌아오는 거라고:”
이 시집 표제작에서 잊히고 억눌린 것들은 언젠가 목소리를 찾으러 돌아온다. 계절에 따른 식물들의 순환이 보여주는 이치가 그것이고, <아베르노>와 <신실하고 고결한 밤>을 비롯해 글릭의 시 세계를 관통하는 주제도 그와 연결된다. 그런데 여기 꽃양귀비의 말을 들어 보자. 생각이 아니라 느낌이 본질적인 것이며, 언어는 상처의 결과이자 그 치유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터이니.
“나는 말을 해요,/ 산산이 부서졌으니까요.”(‘꽃양귀비’ 부분)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