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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생각] 강희제·정약전도 읽은 그 책 ‘유클리드 기하학 원론’

등록 2022-12-02 05:00수정 2022-12-02 09:18

유클리드 원론 1·2
유클리드 지음, 박병하 옮김 l 아카넷 l 각 권 2만4000원

고대 그리스 수학자 유클리드(에우클레이데스)가 집성한 <원론>(stoicheia)은 수학의 경전으로 불린다. 이 저작의 그리스어 원본이 2300년 만에 한국어로 번역됐다. 옮긴이 박병하 박사는 모스크바대학교에서 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고대 그리스, 중세 아랍, 근대 유럽의 수학 고전을 공부하다가 6년에 걸쳐 유클리드 <원론>을 독파한 끝에 우리말로 옮겼다.

유클리드의 <원론>은 기하학 언어로 서술돼 있어 흔히 ‘기하학 원론’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본디 제목이 ‘원론’인 데다 내용의 절반이 자연수론과 무리수론이고 대수학과 해석학의 내용도 많이 들어 있다. 그런 이유로 옮긴이는 한국어본의 제목을 원저자의 이름을 따 ‘유클리드 원론’이라고 붙였다.

라파엘로 &lt;아테네 학당&gt;에 등장한, 컴퍼스로 도형을 그리는 유클리드. 위키미디어 코먼스
라파엘로 <아테네 학당>에 등장한, 컴퍼스로 도형을 그리는 유클리드. 위키미디어 코먼스

전체 13권으로 이루어진 이 저작은 고대 그리스 수학의 모든 성과가 집결된 책이자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수학 발전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끼친 책이다. 이 저작의 지리적 영향은 광대해서 아랍과 유럽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에까지 이르렀다. 17세기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의 한문 번역서 <기하원본>(1607)이 나온 뒤 청나라 강희제가 탐독했고 조선의 정약전도 이 저작을 읽었다고 한다.

유클리드는 기원전 3세기에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하며 프톨레마이오스 1세에게 수학을 가르쳤다는 것 말고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어느 날 수업을 받던 왕이 기하학을 더 쉽게 배울 길이 없는지 묻자 유클리드가 “왕이시여, 기하학에는 왕의 길이 따로 없습니다”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또 기하학 수업을 받던 학생이 그걸 배워 어디에 쓸 수 있는지 묻자 “저 아이에게 돈을 줘서 보내라. 돈벌이를 하려고 배우려는 모양이다”라고 했다는 일화도 전한다. 둘 다 후대에 지어낸 것일 가능성이 크지만, 유클리드 기하학을 숭앙하는 마음이 반영된 일화다.

유클리드 <원론>은 이성의 계발과 지성의 훈련을 위한 기초 교재로서 2000여년 동안 독보적인 지위를 누렸다. 그런 까닭에 수학을 넘어 근대 유럽의 철학과 사상에도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에서 자신의 철학적 사유 방법이 유클리드 기하학 방법을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유럽의 근대 사상은 유클리드의 기하학적 사유 방식이 없었더라면 태어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유클리드의 이 책은 점·선·원 같은 가장 기본적인 정의에서 시작해 공준 5개와 공리 9개로 이어진다. 이 단순한 정의와 공준과 공리를 바탕으로 삼아 피타고라스 정리를 포함해 그때까지 알려진 수많은 수학 명제들을 증명해간다. 옮긴이는 이 저작의 가치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유클리드의 <원론>은 직관과 추상이 균형을 이루고 있어서 끈기 있는 독자라면 연역적으로 사유하고 치밀하게 논증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고, 수학적 사실을 쌓아가며 체계를 잡고 이론을 구성하는 역동적인 과정을 체험할 수 있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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