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청소년문학을 취재차 미국에 갔다가 들은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처럼 대다수 사회들에서 구성원 사이에 위계질서가 생기고 그것이 계급화된다. 미국의 경우 인종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끊임없는 파도의 침식이 해안선을 바꿔버리듯, 오랫동안 사회 전체에 각인된 미국의 인종차별 체제는 수없이 많은 도전들에 끝내 흔들리고 허물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민의 나라’ 미국에서 인종이 사회 구성원들의 위계를 가르는 주된 척도였다면, 우리나라에선 과연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요? 전설적인 여성·흑인 운동가이자 이론가 앤절라 데이비스가 자신의 책 제목(<여성, 인종, 계급>)으로도 말해주듯, 다양한 원인의 모순들이 서로 교직하는 가운데 하나뿐인 척도란 건 없을 겁니다. 다만 인종 문제가 그리 친숙하지 않은 한국 사회의 특징을 감안할 때, ‘여성’, ‘계급’과 함께 ‘지역’을 대신 꼽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 사회에선 모든 측면에서 압도적인 우위에 선 서울과 그렇지 못한 ‘비서울’ 사이의 불균형이야말로, 여성·계급과 함께 일자리, 교육, 부동산, 생태, 문화, 세대 등 온갖 분야의 모순들을 만들고 확대시키고 있으니까요.
제주에서 수원, 고창, 속초, 대구, 광주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역의 ‘책쟁이’들이 자기 지역 고유의 탐나는 먹거리들을 소개한 책 <맛의 탐닉>(상상창작소봄)을 뒤적이다 이런 생각에까지 이르렀습니다. 홍어, 밀면 등 비교적 ‘아는 맛’에서부터 말미잘매운탕처럼 듣도보도 못한 맛까지…. 이토록 다양하고 풍부한 세계에서, 정신의 양식을 만들어줄 뿐 아니라 몸의 양식까지 소개해주시는 분들께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최원형 책지성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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