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을 통해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들
유디트 샬란스키 지음, 박경희 옮김 l 뮤진트리 l 2만3000원 모든 것들은 소멸할 운명을 지고 존재한다. 사람들은 무력감에 빠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과거에 소멸한 것들을 뒤적여 미래에 존재해야 할 것들의 의미를 이끌어내려 한다. 그렇다면 그런 용도에 쓰이지 못할, “수신인이 없는 아카이브, 찾을 사람이 없는 타임캡슐, 상속인이 없는 유산”들은 과연 어디로 가야 하는가? 독일의 작가이자 북디자이너 유디트 샬란스키(42)는 <잃어버린 것들의 목록>(원저 2018년 출간)에서 열두 가지 ‘사라진 것’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되새기며, 상실의 덧없음 그 자체에 대해 오롯한 애도를 띄운다. 지은이는 세상에서 가장 외딴 곳에 있는 50개 섬들의 지도와 이야기를 담은 책 <머나먼 섬들의 지도>(2009)로 주목받은 바 있는데, 독특한 소재와 구성, 기억과 망각이라는 주제, 문학적인 글쓰기 등 지은이 특유의 지문은 이번 책에도 뚜렷하다. 해상지진으로 1875년 지도 위에서 완전히 사라진 남태평양의 섬, 멸종에 이른 카스피해 호랑이 등에서 시작해, 물리학자가 뼈들을 모아 복원했다 주장한 일각수, 무너져 폐허가 된 뒤에 사랑받게 된 건축물, 영화감독 무르나우의 첫 영화 등 글감 자체가 남다르다. 글쓰기 방식 역시 심오하다. 예컨대 소실된 무르나우의 첫 영화에 대한 애도는, ‘한물간’ 영화배우가 되어 맨해튼을 배회하는 영화배우 그레타 가르보의 내면 묘사로 이뤄진다. 동독 출신인 지은이 자신의 어린시절 죽음·상실에 대한 경험이 불타버린 독일 북부의 성에 대한 이야기로 연결된다. 어떤 편들은 ‘환상문학’처럼 쓰였다. 비록 완전할 순 없겠지만, 독자로 하여금 소멸과 상실을 직접 ‘경험’하게 만드는 것이 지은이의 주된 의도로 여겨진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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