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래 평전
고형진 지음 l 문학동네 l 2만3000원
박용래 시전집
고형진 엮음 l 문학동네 l 2만5000원
박용래 산문전집
고형진 엮음 l 문학동네 l 2만2000원
이문구 연작 소설집 <관촌수필>에 실린 단편 ‘공산토월’에는 이문구가 대전에서 첫차로 상경한 시인 박용래와 아침부터 고량주를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창밖으로 쏟아지는 함박눈을 보던 박용래는 “이까짓 눈두 눈인 중 아네?”라며 그가 일제 말기 조선은행(한국은행)에 근무할 때 현금 수송차 경원선 기차를 타고 가며 보았던 북방의 눈에 대해 한껏 자랑(?)을 늘어놓다가는 결국 ‘눈물의 시인’답게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나는 울었다. 그냥 울었다. 두만강 눈송이를 바라보며 한없이 한없이 그냥 울었단 말여…”
국문학자 고형진 교수(고려대 국어교육과)가 새로 낸 <박용래 평전>에도 이 장면이 인용돼 있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 박용래가 기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톡까지 논스톱으루” 달렸다고 말한 것과 달리 조선은행 블라디보스토크 지점은 1931년에 폐쇄되었기 때문에 그가 그곳까지 가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게 고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이문구가 ‘박용래 약전’에서 박용래를 3남 1녀 중 막내로 기술했지만 실제로 박용래는 4남 2녀 중 다섯째이고 그의 쌍둥이 동생이 돌을 못 넘기고 세상을 떴으며, 박용래의 시 ‘풀각씨’가 <중도일보> 1958년 4월2일 치에 발표됐다는 박수연 충남대 교수의 논문과 달리 실제 발표 날짜는 4월20일이었다는 사실 등도 꼼꼼하게 확인한다.
<정본 백석 시집> <정본 백석 소설·수필> 등을 엮어 냈고 <백석 시 바로 읽기> <백석 시의 물명고> 등을 낸 백석 전문가 고형진 교수는 평전과 함께 낸 <…시전집>과 <…산문전집>에서도 특유의 학자적 성실성을 발휘해 박용래 문학의 전모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한다. 전집 간행 과정에서 그는 박용래의 둘째 딸한테서 박용래의 습작 노트와 그의 시가 메모된 자료 전체를 건네받았다. 그가 박용래 주요 시의 개작 과정을 확인하는 한편 미발표작을 대거 수습해 전집 말미에 수록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가난한 아름다움’에 눈길을 돌(리고) 가장 한국적인 서정이 풍기는 시를 쓴”(고형진) 박용래의 진면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 1970년 제1회 현대시학작품상 수상작인 ‘저녁눈’이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저녁눈’ 전문)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