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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기술자, 시대의 조롱꾼
폴커 라인하르트 지음, 최호영·김하락 옮김 l 북캠퍼스 l 2만9000원 정치사상가 니콜로 마키아벨리(1469~1627)의 전기는 여러 종 나와 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연구 권위자인 역사학자 폴커 라인하르트(스위스 프리부르대학 교수)가 쓴 <마키아벨리>는 시대의 상식을 조롱하는 도발적인 마키아벨리 모습에 초점을 맞춘 평전이다. 도발함으로써 미움을 부르기도 하고 감탄을 부르기도 하는 사람이 이 책이 그려내는 마키아벨리다. 마키아벨리의 도발자 면모는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부터 전면에 드러나 있다. 마키아벨리는 1521년 프란체스코 구이차르디니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착한 피렌체 사람들은 천국으로 가는 길을 제시할 설교자를 원하지만, 저는 악마의 집으로 가는 길을 제시할 설교자를 찾고 싶습니다. 귀하는 분별 있고 신중하며 정직하고 이성적인 사람을 원하지만, 저는 폰초보다 더 미쳤고 사보나롤라보다 더 교활하며 알베르토보다 더 위선적인 사람을 원합니다.” 당시 마키아벨리는 1512년 메디치 가문이 복귀해 피렌체의 권력을 장악한 뒤 공화국 정부 제2서기국의 서기장직에서 쫓겨나 있던 터였다. 그 마키아벨리에게 피렌체 정부가 이웃 도시에서 사순절 설교를 할 모범적인 수도사를 선정하는 임무를 맡기자 이런 편지를 보낸 것이다. 지배적인 의견에서 벗어나 거의 반도덕적이고 반상식적인 주장을 내놓는 마키아벨리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편지다. 당시에도 마키아벨리의 반도덕주의는 사람들 사이에 악명이 높았다. 이런 도발성은 마키아벨리의 주저 <군주론>과 <로마사 논고>에도 깊이 새겨져 있다. 두 저작은 거의 동시에 집필됐으나, 하나는 군주국을 지키려는 자에게 바치는 책이고 다른 하나는 공화국을 세우려는 자들에게 주는 책이다.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이 두 생각의 충돌을 두고 수많은 해석이 나왔다. 두 세기 뒤 장자크 루소는 마키아벨리가 굳센 공화주의자로서 군주의 본질을 폭로하려고 <군주론>을 썼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이 책의 지은이는 그런 견해에 전면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마키아벨리가 공화주의를 신념으로 삼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마키아벨리 안에는 모순이 있으며 이 모순이 책으로 표출됐다고 본다. 지은이가 주목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국가를 개인에 앞세우는 국가주의자 마키아벨리다. 그렇다고 해서 마키아벨리를 현대 전체주의의 선구자라고 부를 수도 없다고 이 책은 말한다. 지은이의 결론은 이렇다. “마키아벨리를 인권에 바탕을 둔 다원론적 민주주의의 선구자로 받아들이는 자는 그의 시대와 그 관심사를 곡해하고 있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를 정치범 수용소와 강제노동 수용소의 예찬자로 비난하는 자도 마찬가지다. 마키아벨리를 당대의 관점에서 이해할 때만, 당대의 위기이자 모든 시대의 화근에 구제책을 고안해낸 지적 아웃사이더로 이해할 때만 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당대 주류 지배층의 바깥에 있던 사람이었기에 인간과 정치에 관한 놀라운 통찰을 보여줄 수 있었다는 얘기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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