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과 쾌락을 관장하는 놀라운 구멍, 항문 탐사기 이자벨 시몽 지음, 윤미연 옮김 l 문학동네 l 1만7000원 그러고 보니 신화나 놀이, 고통, 언어, 문학에서도 빠지지 않는 게 항문이다. ‘사춘기’도 결국 ‘항문기’ 탓이더라는 그 놀라운 변증까지. 기저귀도, 위생학도, 보수 기독교도 힘써 감추었다 했겠으나 이미 너무 드러나 있다. 도대체 누가 어쩌다들 그리 엉덩이를 깠지? ‘항문 탐사기’ <애널로그>가 던진 질문 하나만 추리라면 이것이다. 개나 고양이가 꼬리를 들어 올려 제 뒷밑을 인간에게 내보이는 일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개가 상대의 엉덩이에 코를 대고 탐찰한 냄새로 심리, 건강, 성별, 하여 암컷이라면 생리주기까지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자신의 민감하고 취약한 전부를 드러내는 행위이고, 한 인간을 전폭적으로 신뢰한다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유사한 방식으로 신뢰를 확인하기엔 아무렴 뒤떨어진 후각 능력부터 따져보아야겠다. 이 계절 껴입은 옷은 또 얼마나 많은가. 다만 수정란 바깥에 최초로 생기는 하나의 구멍 ‘원구’가 곧 태아의 항문이고, 항문관은 심장처럼 자율신경계로 닫혀 의지로도 통제되기 어려우며, 심정지 사망 뒤에도 장 압력으로 한동안은 방귀를 뀌고 항문기 말기부터 한평생 팽팽하던 내괄약근도 비로소 스스로를 놓아 배변을 또 보게 되는, 말 그대로 시작과 끝의 상징적 구실을 한다는 데엔 토 달기 어렵다. 붉은귀거북은 항문으로도 숨을 쉬고, 젖먹이의 기저귀는 배변 가리기를 방해한다. “우리는 동물의 행위를 관찰함으로써 본성이 아니라 문명에 관해 알 수 있다. …문명은 사실상 본성을 억압해 본성대로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는 명제로, 동물계를 오가며 항문의 입장을 의·과학, 섹스, 미술, 문학, 역사 등을 아울러 유쾌하게 짚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슬쩍 한번 힘을 줘보게 되는 일.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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