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분열의 이탈리아 잔혹사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하인후 옮김 l 무블출판사 l 4만4000원 니콜로 마키아벨리(1469~1527)의 대표작은 <군주론>과 <로마사 논고>지만, 고국 피렌체의 정치사를 다룬 <피렌체사>도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알려면 함께 읽어야 할 저작이다. 생애 말년에 심혈을 기울여 쓴 이 대작이 ‘마키아벨리의 피렌체사’라는 이름으로 처음 번역·출간됐다. 이번 한국어판은 영어판을 대본으로 삼았다. <피렌체사>는 1512년 메디치 가문의 복귀로 공직에서 쫓겨난 마키아벨리가 1520년 메디치 가문의 요청을 받고 쓰기 시작해 1526년 완성한 작품이다. 전체 8권으로 이루어진 이 저작은 먼저 제1권에서 로마 제국이 동서로 분열되는 4세기 후반 이후 1천년의 역사를 개략적으로 다룬다. 피렌체사를 그리기 위한 밑그림에 해당한다. 이어 13세기 초반 피렌체의 유력 가문 부온델몬티와 우베르티의 충돌로 피렌체가 극심한 분열에 빠져들게 되는 데서 시작해 1492년 메디치 가문의 수장 로렌초 일 마니피코의 죽음까지를 서술한다. 마키아벨리는 책의 서문에서 피렌체의 역사를 다룬 기존 책들이 지닌 문제점을 거론한다. “내부 분열과 그 결과에 관해서는 마치 그것들이 독자에게 아무런 쓸모도 재미도 없는 내용인 양, 어떤 것은 완전히 침묵하고 또 다른 것은 매우 간략하게 서술했다.” 마키아벨리는 이런 회피가 당대 권력자들의 눈치를 본 탓이라며 “훌륭한 역사가가 취할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공화국을 통치하는 이들에게 유익한 교훈은 도시의 불화와 분열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보여주는 것이며, 그렇게 지난 사례를 통해 현명해짐으로써 도시의 통합을 유지하는 비밀을 배우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가 피렌체사를 어떤 태도로 서술할지 미리 이야기하는 대목이다. 다른 저작과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도 마키아벨리는 간결하고 자신감에 찬 문체로 사태를 기술하고 자신의 주장을 명확히 드러낸다. 서문에서 이야기한 대로 마키아벨리의 관심은 피렌체의 내부 분열이 어떻게 공화국을 흔들고 도시를 쇠락에 이르게 했는지 규명하는 데 있다. 제8권에 나오는 문장이 대표적이다. “어떤 분열은 공화국에 해롭고, 또 어떤 분열은 공화국에 이롭다는 말은 진실이다. 다시 말해 파벌과 반목을 동반하는 분열은 공화국에 해로우며, 파벌과 반목을 수반하지 않는 분열은 공화국에 이롭다 (…) 하지만 불행히도 피렌체의 분열은 늘 파벌을 동반했고, 그 결과는 항상 공화국에 해로웠다.” 제4권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전제적인 정부는 선량한 사람들을 불쾌하게 하고 방종한 정부는 현명한 이들을 불쾌하게 하며, 전제적인 정부는 쉽게 악을 행하고 방종한 정부는 아주 드물게만 선을 행하며, 전제적인 정부에서는 오만한 사람들이, 그리고 방종한 정부에서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너무 많은 권한을 행사한다.” 실권을 쥔 자들의 오만함과 어리석음이 나라를 망친다는 얘기다. <피렌체사>는 피렌체의 지배자였던 메디치 가문의 주문을 받아 쓴 역사서지만, 그 서술의 바탕에 깔린 것은 공화주의자의 열망이다. 마키아벨리는 이 책을 완성한 뒤 메디치 가문이 배출한 교황 클레멘스 7세에게 바쳤다. 그 1년 뒤 메디치 가문이 쫓겨나고 시민정부가 다시 등장했다. 마키아벨리는 이제야말로 자신의 뜻을 다시 펼칠 시대가 열렸다고 생각하고 공직에 지원했지만, 새 정부는 마키아벨리를 메디치 가문과 결탁한 자로 보고 배척했다. 그 충격으로 마키아벨리는 갑자기 중병에 걸려 <피렌체사>를 뒤에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