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15일 야이르 라피드 당시 이스라엘 총리가 극우파 연합이 승리한 25대 크네세트(이스라엘 의회) 출범 이후 성명을 발표하고 있는 모습. 뒤에는 유대교 신화를 표현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데페아 연합뉴스
유대인, 발명된 신화
기독교 세계가 만들고, 시오니즘이 완성한 차별과 배제의 역사
정의길 지음 l 한겨레출판 l 2만4000원
이스라엘 의회 ‘크네세트’는 2018년 7월 건국 70돌을 맞아 ‘유대 민족국가 기본법’을 통과시켰다. 현대의 어떤 나라도 자신을 특정 민족이나 집단의 국가로 규정하진 않는다. 그러나 이 법은 “이스라엘은 유대인들의 역사적 조국이며, 그들은 배타적 자결권을 지닌다”고 명시했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땅 점령을 합법화하고, 아랍어를 공용어에서 ‘특수 지위’ 언어로 격하시켰다. ‘우리’ 아닌 ‘저들’이라 박해받아온 역사 위에 세워진 나라가 ‘우리’ 아닌 ‘저들’을 차별하겠다고 명시적으로 선언하는, 지독히 역설적인 장면이다.
오랫동안 국제 문제, 특히 중동 문제를 천착해온 정의길 <한겨레> 선임기자가 쓴 <유대인, 발명된 신화>는 풍부한 역사적 사실들을 바탕으로 이 역설을 깊이 들여다본다. 지은이는 “유대인과 이스라엘의 문제를 놓고 극단적 편향으로 양분된 일반인들의 인식”을 겨냥한다. 유대인과 이스라엘을 두고, 한쪽에선 보수 진영과 기독교를 중심으로 ‘우리가 배워야 할 모범 국가’라 상찬하는 반면, 다른 한쪽에선 진보 진영을 중심으로 중동분쟁의 원흉 또는 미국의 대리인이라 비판한다. 세계를 은밀히 움직이는 세력이라는 음모론도 빠지지 않는다. 이에 대해 지은이는 유대인이라는 것 자체가 역사가 만들어낸 산물임을 인식하는 데에서 출발하자고 제안한다. 부제가 압축적으로 드러내듯, 유대인은 자기 땅에서 추방되어 2천년 만에 돌아온 실제의 민족 집단이 아니라 “기독교 세계가 만들고, 시오니즘이 완성한 차별과 배제의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일종의 신화라는 것이다.
지난해 10월3일 극단적 정통파 유대인 남성들이 이스라엘 네타냐에서 열린 타슬리흐 의식에 참여해 지중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기도하고 있다. 히브리어로 ‘버리다'는 뜻의 타슬리흐는 유대인들이 명절 전에 빵 한 조각 등의 음식을 흐르는 물에 던져 넣음으로써 상징적으로 죄를 ‘버리다'는 관습이다. 에이피 연합뉴스
‘유일신을 믿는 이스라엘 종족들이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 왕국을 건설해 영화를 누렸고, 로마에 의해 추방되어 서방 기독교 세계에서 박해를 받다가, 결국 고토로 돌아와 이스라엘을 건국했다.’ 이 이야기는 수많은 고고학적 연구 성과에 따라 이미 허구로 드러난 바 있다. 지은이는 이스라엘 핑켈스타인, 슐로모 산드 등의 연구 성과들을 인용해, 원(原)이스라엘은 이집트로부터의 ‘엑소더스’가 아닌 가나안 내부에서 만들어졌고, 다윗과 솔로몬의 통일왕국은 산악의 조그만 부족국가에 불과했으며, 야훼 유일신앙은 가나안이 아닌 바빌론 유수 시기에 정립됐다는 사실 등을 확인한다. 결정적인 것은 ‘로마가 유대인들을 팔레스타인에서 추방했다’는, 유대인이 자기 정체성의 뿌리로 삼고 있는 주장이 허구라는 사실이다. 로마가 유대인 봉기를 잔인하게 진압한 것은 사실이지만, 주민들을 추방한 일은 없었다. 여러 연구들은 그 이전부터 지중해 전역에 유대인 공동체가 있었으며, 이는 유대인이라는 단일 민족의 이동이 아니라 기원 전후 유일신교의 확산, 곧 여러 지역의 사람들이 유대교로 ‘개종’한 결과라는 것을 밝힌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건국 당시 팔레스타인 땅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되레 고대 유대 주민의 후예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총선을 앞둔 지난해 10월25일 이스라엘 브나이브락에서 전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가 등장한 선거 광고판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는 모습. 역대 최장수 총리인 네타냐후는 이번 총선에서 극단적 유대주의 정당 연합과 손잡아 다시 집권했다. 에이피 연합뉴스
근대 이전 유대인 정체성은 민족적 차원이 아니라 종교적인 차원에서 형성됐다. 중근동에 쏠려 있던 유대인 공동체들은 종교에 관용적이지 않은 몽골이 침략해오며 유럽으로 대량 이주했는데, 중세 유럽은 유대인들을 ‘저들’로 삼아 박해하는 방식으로 ‘우리’라는 기독교 세계를 굳건히 했다. 기독교 세계의 의무에서 배제된 유대인들은 세속적인 세계에서 일말의 자유를 누렸는데, 이는 유대인들이 세수·행정·교역·외교 등을 담당하는 중간계급이 되는 통로를 제공했다. 국제적인 금융자본을 형성하기도 하는 등 유대인들의 성취는 또다시 이들이 기생적·착취적 경제활동에 종사한다는 질시와 비난으로 이어졌다. 말하자면 차별에 대응하기 위해 형성한 소수자의 정체성이 또 다른 차별을 부른 셈이다. 이는 근대 이전에는 종교에 대한 차별이었던 ‘반유대주의’(anti-judaism)가 근대에 들어 인종을 겨냥한 ‘반유대주의’(anti-semitism)로 변화하는 핵심적인 배경이 됐다.
19세기 러시아에서 시작된 인종주의적 차원의 유대인 박해 ‘포그롬’은 동유럽·러시아에 있던 유대인들이 미국과 서유럽으로 집단 이주하는 계기가 됐고, 유대인 사회에서는 반유대주의에 대한 대응을 위해 ‘팔레스타인으로 귀환해 국가를 만들자’는 ‘시오니즘’이 태동했다. 주류 유대인 사회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던 시오니즘을 현실로 끌고 들어온 것은 중동에서 영국의 세력권을 만들고 싶어 한 영국 정치인들이었다. 1917년 영국 외무장관 아서 제임스 밸푸어는 “유대인을 종교공동체가 아니라 국가를 가질 자격이 있는 민족공동체”임을 최초로 인정한 ‘밸푸어 선언’을 냈다. 그는 “팔레스타인에서 기존 비유대인 공동체”라는 표현을 썼는데, 애초 오스만튀르크 치하 유대교도(10%가량), 이슬람교도 등이 섞여서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에는 ‘유대인’과 ‘비유대인’이라는 정체성 자체가 없었다. “서구 기독교 세계가 만들어낸 유대인 문제”, 그러니까 ‘우리’와 ‘저들’의 구분을 “중동으로 수출”해버린 셈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유대인 게토 ‘유덴가세’의 모습. 위키미디어 코먼스
1948년 이뤄진 현대 이스라엘 국가의 건국은 이후 중동 전역을 관통하는 숱한 분쟁과 전쟁의 씨앗이 됐다. 건국 당시부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국가를 모두 세우는 ‘두 국가 해법’이 제시됐지만, 당사자들과 영국, 아랍 세계의 욕심과 무책임으로 이 해법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열쇠를 쥔 이스라엘은 나날이 우경화하는 중이다. 평화협상을 집요하게 파탄시켰던 극우파 정치인 베냐민 네타냐후가 지난해 11월 총선에서 극우파 연합의 힘으로 다시 복귀했고,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상대로 인종주의 범죄를 저지른 바 있는 이타마르 벤그비르가 경찰을 지휘하는 공공치안장관으로 지명됐다.
유대인과 이스라엘을 둘러싼 역사는 이처럼 “잔인한 역설”로 가득 차 있다. 역사 속 인종주의의 피해자였던 유대인과 이스라엘은 이제 현실 속 인종주의의 가해자가 되었고, 이런 모습을 두고 미국에서는 또다시 반유대주의가 점차 고개를 들고 있다. 기독교도가 유대인을 창조했고,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을 창조했다. 지은이는 “한국 사회에는 지금 ‘우리’와 ‘저들’의 구분이 없는가” 묻는다. 그런 구분이 있다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반드시 되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