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집
이승현 지음 l 보리(2010)
어린이들과 책을 읽고 하는 활동 중에 표정 그리기가 있다. 책 속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한 인물의 감정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같은 장면을 여러 인물이 얼마나 다르게 받아들이는지 생각해보기 위해서다.
그럴 때 어린이는 자기가 그리는 것과 같은 표정을 짓곤 한다. 깜짝 놀란 얼굴을 그릴 때는 어린이 눈이 동그래진다. 슬픈 표정을 그릴 때는 고개가 한쪽으로 기울고 눈썹 끝이 내려온다. 마스크에 가려 있지만 분명히 입술도 씰룩일 것이다. 크게 웃는 표정을 그릴 때면 갑자기 근육이 늘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얼굴이 확 피어난다. 눈에는 금방 장난기가 어린다. 어른들도 그렇다. 우리는 누군가를 그리는 동안 그 사람이 된다.
이승현 작가는 표정을 정말 잘 그린다. 특히 <씨름>(김장성 글, 사계절)은 두 장사가 씨름판에서 엎치락뒤치락하며 짓는 표정, 구경꾼들이 한눈팔다가 집중하고 환호하는 표정이 고스란히 독자의 표정이 되는 작품이다. 아마 작가 자신도 그런 표정으로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까.
<파란집>은 2009년 ‘용산 참사’를 상징적으로 기록한 그림책이다. 작고 허술하나마 각자의 ‘파란집’에서 삶을 꾸리며 살아가던 사람들은 재개발 사업이라는 이름의 폭력 아래 놓인다. 이들은 갈 수 있는 곳이 없다. 누군가는 버티기도 하지만, 밤낮으로 계속되는 위협을 이기지 못해 결국 삶의 터전을 떠난다. 마지막 다섯 명이 모인 ‘파란집’에 전쟁터의 군인처럼 무장한 이들이 들이닥치고, ‘파란집’에 온기를 주던 난로가 쓰러지며 불이 난다. 모든 것이 무너진 자리에, 무엇이 어떻게 무너졌는지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높은 건물이 늘어선다.
2009년 1월20일 새벽 경찰이 농성 중인 철거민들의 강제진압에 나서며 서울 용산구 한강로 3가 남일당 망루가 화염에 휩싸여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이 책에는 글이 없어서 그림을 자세히 보아야 한다. 자본과 힘을 앞세운 이들은 철거민을 조롱하고 윽박지르거나 화를 내고 있다. 집을 빼앗긴 사람들에 대해서는 슬퍼하고 있다는 것만 짐작할 수 있다. 왜냐하면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기 때문이다. 어둠이 짓누를수록 아예 손으로 얼굴을 가린 이들이 늘어난다. 크게 울 때 우리가 그렇게 하듯이. 그림을 그리면 그림 속의 표정과 닮은 얼굴이 된다. 이 책을 읽는 이들도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다.
세상에는 내가 알고 있는 사실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마음이 있다. 한겨울, 다른 방법이 있는데도 굳이 위험한 망루에 오른 사람은 없다. 가족을 태운 배가 바다에 잠겨버린 일에 대해 알아내기 위해 길에서 자는 것을 ‘선택’한 사람도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 길에서 죽었는데 그곳에 죽음을 모욕하는 말들이 내걸린 걸 보고도 괜찮은 사람은 없다. 휠체어를 타고 지하철을 이용하기 위해 경찰에 진압당하는 게 괜찮은 사람도 없다. 그러니 누군가가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알 수 없다면 “불법 시위”라고 쉽게 말하는 대신 그 얼굴을 들여다보고 같은 얼굴을 해보면 좋겠다. 그렇게 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이 가장 두려운 ‘참사’다. 1월20일, 용산 참사 14주기를 맞이하며 생각했다.
김소영/독서교육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