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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생각] 알랭 바디우 “니체·라캉은 진리를 해임하는 반철학자”

등록 2023-01-27 05:00수정 2023-01-27 09:25

알랭 바디우 세미나 자크 라캉
알랭 바디우 지음, 박영진 옮김 l 문예출판사 l 2만2000원

알랭 바디우 세미나 프리드리히 니체
알랭 바디우 지음, 박성훈 옮김 l 문예출판사 l 2만4000원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86)는 1969년부터 1999년까지 파리8대학(뱅센대학) 교수를 지냈다. 파리8대학은 프랑스 5월 혁명의 열기 속에 미셸 푸코를 비롯해 당대 진보 지식인들이 주도해 세운 대학이다. 바디우도 이 대학 설립에 적극 관여했고 그 대학에 자리를 잡았다. 여기서 바디우는 1975년 이래 해마다 ‘철학 세미나’를 진행했는데, 이 세미나에서 얻은 결실로 <주체의 이론>(1982), <존재와 사건>(1988), <세계의 논리>(2005) 같은 주요 저작을 산출했다. 특히 1992년부터 1996년 사이에는 바디우 자신이 ‘반철학자’라고 부르는 프리드리히 니체,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 기독교 창시자 바울의 사상을 주제로 삼아 연달아 강의했다. <알랭 바디우 세미나 자크 라캉>과 <알랭 바디우 세미나 프리드리히 니체>는 라캉과 니체 세미나를 각각 담은 책이다. 세미나 내용을 특별한 가공 없이 그대로 출간했기에 바디우의 육성을 들을 수 있다.

‘반철학’은 플라톤 이후 이어져온 전통적인 철학에 반대하는 철학, 바디우의 표현을 쓰면 “진리라는 철학적 범주를 해임하는” 철학을 뜻한다. 진리의 담지자로 자임하는 전통적 철학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그 전통적 진리를 주인의 자리에서 내쫓는 철학이 바디우가 말하는 반철학이다. 그 반철학의 현대적 계보의 시초에 서 있는 사람이 니체다. 니체는 철학자를 ‘범죄자 중의 범죄자’라고 불렀으며 ‘유럽은 플라톤이라는 질병으로부터 치유돼야 한다’고 말했다. 바디우는 니체를 두고 “빈곤하지만 결정적인 반철학의 군주”라고 부른다. 그 반철학 계보의 마지막에 놓인 사람이 라캉이다. 바디우는 라캉을 두고서는 “최후의 반철학자”이자 “가장 정교한 반철학자”라고 부른다.

바디우에게 니체와 라캉은 전통 철학을 전복함으로써 바디우 자신의 철학을 설계해 나가는 데 중요한 통찰을 주는 사람이다. 그러나 바디우가 니체와 라캉을 긍정적으로만 보는 것은 아니다. 바디우 자신이 현대의 플라톤주의자로서 진리라는 철학적 범주를 부활시키려 하는 사람이다. 니체와 라캉은 ‘철학자’ 바디우가 대결하고 극복해야 할 대상, 곧 철학의 적수이기도 하다.

‘니체 세미나’에서 바디우는 <이 사람을 보라> <우상의 황혼> 같은 니체의 말년 텍스트들에 주목하고 이 텍스트들을 분석한다. 광기의 침탈로 정신이 붕괴되기 직전의 니체야말로 가장 진정성 있는 니체라고 보기 때문이다. ‘라캉 세미나’에서 흥미로운 것은 반철학자에게 특정한 철학자가 적수로 설정돼 있다는 바디우의 진단이다. 반철학자는 그 철학자를 웃음거리로 만들어버린다. 이를테면 파스칼의 적수는 데카르트였고 루소의 적수는 볼테르였으며 키르케고르의 적수는 헤겔이었다. 동시에 이 반철학자들에게는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하는 제3의 인물들도 있다. 이 인물들을 놓고 반철학자는 철학자와 쟁탈전을 벌인다. 파스칼에게는 당대의 리베르탱(자유사상가)이 그런 사람이었고, 키르케고르에게는 ‘여자’가 그런 대상이었다고 바디우는 말한다.

그렇다면 라캉에게는 누가 그런 사람인가? 동료 정신분석가들이 라캉이 구해내려는 사람들이었다. 라캉은 이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철학을 읽으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그것은 철학에 빠져들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철학의 위험을 인식함으로써 철학에서 빠져나오게 하려는 것이었다. 철학이야말로 정신분석의 적수인데, 정신분석가에게 그 철학을 이겨내는 항체가 생기려면 먼저 철학의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 위키미디어 코먼스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 위키미디어 코먼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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