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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죽은 친구 곁에 밤새 머문 코끼리…동물도 장례 지킨다

등록 2023-01-27 05:00수정 2023-01-28 01:26

[책&생각]
인사, 구애, 놀이, 애도, 회복…
정작 인간은 소홀히 하는 절차들
야생의례 통해 공존 지혜 찾아야
코끼리는 같이 놀고 싶은 친구의 머리 위로 코를 뻗는다. 개들이 절을 하듯이 몸을 낮춰 같이 놀자는 뜻을 전하는 의례와 비슷하다. ⓒCaitlin O’Connell & Timothy Rodwell, 현대지성 제공
코끼리는 같이 놀고 싶은 친구의 머리 위로 코를 뻗는다. 개들이 절을 하듯이 몸을 낮춰 같이 놀자는 뜻을 전하는 의례와 비슷하다. ⓒCaitlin O’Connell & Timothy Rodwell, 현대지성 제공

코끼리도 장례식장에 간다
동물들의 10가지 의례로 배우는 관계와 공존
케이틀린 오코넬 지음, 이선주 옮김 l 현대지성 l 1만8000원

인간과 다른 동물을 구분하는 여러 기준들이 있다. 언어와 도구의 사용 여부가 대표적이다. 이성과 본능으로 양쪽을 나누기도 하고, 이기심과 이타주의를 각각의 특징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기준과 설명에 배치되는 증거들이 속속 나타나면서 이제 인간과 동물을 결정적으로 구분하는 차이는 사실상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미국의 행동생태학자이자 코끼리 전문가인 케이틀린 오코넬의 <코끼리도 장례식장에 간다>는 의례라는 프리즘을 통해 인간과 동물의 친연성과 공통점을 설파한다. 의례는 흔히 동물과 구분되는 인간만의 특징으로 간주되지만, 동물들에게도 나름의 의례가 있다는 것이 이 책(원제는 ‘야생의 의례’를 뜻하는 Wild Rituals)의 주장이다.

여기서 말하는 의례는 범위가 넓다. “정확한 절차에 따라 자주 되풀이하는 구체적인 행동은 모두 의례”에 해당한다. 지은이는 인사, 집단, 구애, 선물, 소리, 무언, 놀이, 애도, 회복, 여행 등 10개 범주로 나누어 동물들이 실천하는 의례를 소개한다. 그의 전공인 코끼리뿐만 아니라 얼룩말, 코뿔소, 사자, 홍학, 극락조, 바우어새, 거북이, 늑대, 오랑우탄, 침팬지, 고래 등 여러 동물의 사례가 동원된다. 동물과 자연 세계에 관한 새로운 발견보다는 그것이 우리 인간의 삶에 주는 교훈에 주안점이 놓인다.

수컷과 암컷 기린이 서로의 목을 감싸며 구애하고 있다. ⓒCaitlin O’Connell &amp; Timothy Rodwell, 현대지성 제공
수컷과 암컷 기린이 서로의 목을 감싸며 구애하고 있다. ⓒCaitlin O’Connell & Timothy Rodwell, 현대지성 제공

“의례가 간단하든 복잡하든 참여자는 몸과 마음에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우리는 서로 연결하고, 두터운 유대를 느끼고, 새로운 질서에 몸을 맡긴 채 공동체에 뿌리내린다.”

의례의 이런 효과는 동물과 인간 사이에 차이가 없다. 오히려 야생의 동물들이 지키는 의례를 인간은 점점 더 소홀히 하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문제의식이다. 연결과 유대, 공동체와 같은 가치들이 희박해진 데에는 코로나 팬데믹이 강제한 비대면 문화 역시 한몫을 했다. “우리는 10가지 의례를 통해 자신과의 관계, 사람들과의 관계, 세상과의 관계를 더욱 튼튼하게 구축할 수 있다.”

지난 30년 동안 해마다 나미비아 에토샤 국립공원을 방문해 코끼리를 연구해 온 지은이는 코끼리의 인사법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모녀 사이로 짐작되는 코끼리 두 마리가 불과 몇 분 내지는 몇 시간 만에 다시 만나서 나누는 요란한(!) 인사가 그를 감동시켰다. 두 코끼리는 마주 서서 “코를 치켜 올리고 우레 같은 소리로 울부짖”은 다음 “서로의 코를 상대의 입가로 가져갔다.” 악수인 셈이다. 그런 다음 두 코끼리가 같은 방향으로 나란히 서서는 “갑자기 볼일을 시원하게” 보는 것으로 인사가 마무리되었다. “떨어진 시간이 얼마나 흘렀든 관계없이 코끼리 가족은 만날 때마다 그것을 기념하는 의미를 담아 인사한다.”

어른 수컷 아프리카코끼리가 자기보다 서열이 높은 수컷의 입에 코를 갖다 대며 인사한다. 사람이 종교 지도자나 마피아 두목의 반지에 입맞춤하는 모습과 비슷하다. ⓒCaitlin O’Connell &amp; Timothy Rodwell, 현대지성 제공
어른 수컷 아프리카코끼리가 자기보다 서열이 높은 수컷의 입에 코를 갖다 대며 인사한다. 사람이 종교 지도자나 마피아 두목의 반지에 입맞춤하는 모습과 비슷하다. ⓒCaitlin O’Connell & Timothy Rodwell, 현대지성 제공

인사의 의미는 연결과 유대를 확인하는 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사를 하면서 동물들은 “다른 개체의 호르몬이나 심리 상태에 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모은다.” 그런 점에서 인사는 “생존을 위한 기술”이기도 하다. 생존과 직결되는 의례는 인사만이 아니다. 흔히 비본질적인 시간 소모로 여겨지는 놀이 역시 “생존하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자나 늑대 같은 맹수의 새끼들이 놀이 형식으로 사냥 연습을 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사람과 동물 모두에게 놀이는 인지 발달과 직접 관련이 있으며, “혁신을 일으키고 탐구하도록 자극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존은 얼마나 잘 노느냐에 달려 있다.”

죽은 동료에게 작별을 고하는 애도 의례 역시 생존과 직결된다. 사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동물들에게도 새끼나 부모, 동료의 죽음을 충분히 슬퍼하고 적절한 작별 의식을 치르는 일은 남은 개체가 상실감을 극복하고 새롭게 살아갈 힘을 얻는 데 도움이 된다. 동물의 애도 의례 가운데에서도 한국어판 제목을 낳은 코끼리의 사례는 특히 감동적이다. 동물원의 우두머리 암컷 코끼리가 안락사 한 뒤 그와 친했던 두 코끼리는 “밤새 번갈아 가며 조용히 죽은 친구를 찾아갔다. 절대 죽은 친구를 혼자 누워 있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갈 때마다 각자 주기적으로 죽은 친구의 몸에 흙을 뿌려 덮어주었다.” 다음 날 아침 죽은 코끼리의 몸 위에는 5밀리미터가 넘는 흙이 덮였다. 야생 침팬지 한 마리가 나무에서 떨어져 죽자 나무 위의 다른 침팬지들이 죽은 침팬지의 몸 위로 나뭇가지를 꺾어서 떨어뜨리는 모습이 관찰되기도 했다. “사체가 나뭇가지로 완전히 뒤덮였다.”

얼룩말이 상대방을 입으로 살짝 문 다음 털을 다듬어주면서 인사한다. ⓒCaitlin O’Connell &amp; Timothy Rodwell, 현대지성 제공
얼룩말이 상대방을 입으로 살짝 문 다음 털을 다듬어주면서 인사한다. ⓒCaitlin O’Connell & Timothy Rodwell, 현대지성 제공

주로 수컷 새들에게서 보이는 화려한 깃털과 춤, 심지어 오두막 건축과 선물 전시 같은 구애 의례는 포식자의 눈길을 끌어 생존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에 반하는 듯한 이런 현상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암컷이 특별한 특징을 보이는 수컷을 선택하는 행동이 진화를 주도한다”는, 다윈의 또 다른 개념 ‘성선택’ 이론이 그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깃털 장식이나 구애 춤은 수컷의 운동 능력을 알려준다. 건강한 새끼를 낳아서 안전하게 키울 수 있을지 여부를 수컷의 구애 의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수컷 검은코뿔소 두 마리가 뿔을 맞대면서 인사한다. 창 시합에서 창을 부딪치는 모습과 비슷하다. ⓒCaitlin O’Connell &amp; Timothy Rodwell, 현대지성 제공
수컷 검은코뿔소 두 마리가 뿔을 맞대면서 인사한다. 창 시합에서 창을 부딪치는 모습과 비슷하다. ⓒCaitlin O’Connell & Timothy Rodwell, 현대지성 제공

“이 책을 쓰면서 나는 남편과 가만히 바라보거나 스킨십 같이 간단하지만 중요한 구애 의례를 소홀히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동물들의 의례를 관찰하고 소개하면서 지은이는 자신을 포함해 인간들이 갈수록 의례를 소홀히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반성한다. 그가 여러 동물들의 갖가지 의례에 주목하는 까닭은 우리 인간이 “코끼리, 고래, 늑대를 비롯한 의식이 있는 모든 존재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강조하기 위해서다. “인간이 독특하고 유일무이한 존재라서 자연을 지배한다는” 생각은 분명 잘못이다. 그러나 또한 우리 인간에게는 두 가지 커다란 힘이 있다. “이 행성 위의 서식자와 모든 생명을 보호할 힘과 파괴할 힘이다.” 우리가 점점 잊어 가고 있는 야생의 의례를 되살림으로써 우리는 자연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위치를 확인하고, 자연의 일부로 다른 동물들과 공존할 지혜와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은이가 책 말미에서 기후 변화 시대 인간의 책임감을 강조하는 것은 그런 맥락에서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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