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사회학
막스 베버 지음, 김덕영 옮김 l 길 l 3만5000원
막스 베버(1864~1920)는 독일 현대 사회학의 창설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베버가 후대에 끼친 영향은 광대해서 인문사회과학의 주요 분야에 두루 미친다. 베버의 사회학은 ‘이해사회학’으로 불리는데, 베버의 저술 네 편을 묶어 옮긴 <이해사회학>은 이해사회학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전체 과정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베버 사회학 탄생사다. 베버 전문가 김덕영 독일 카셀대 교수가 편집‧번역하는 ‘막스 베버 선집’ 10권 가운데 세 번째 권이다.
이해사회학은 ‘인간의 사회적 행위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학문’을 뜻한다. 그런데 베버 사회학의 논의를 보면, 개인들의 행위 자체에 대한 미시적 이해보다는 국가‧도시‧종교‧관료제‧자본주의 같은 거시적 차원의 분석에 중점을 둔다. 여기서 오해가 빚어진다. 이 오해를 씻으려면, 이해사회학이 거시적 차원의 구조를 설명하는 것을 목표로 하되 그 출발점을 인간의 사회적 행위에 두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해두어야 한다. 개인들의 사회적 행위가 관계로서 체계를 이룬 것이 거시적 차원의 구조들이며, 이해사회학은 인간의 사회적 행위를 이해함으로써 그 거시적 구조를 설명한다.
이해사회학을 세운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 위키미디어 코먼스
베버가 처음부터 사회학자의 정체성을 지녔던 것은 아니다. 베버는 대학에서 법학‧경제학‧역사학‧철학을 공부해 법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고대 로마 농업사 연구로 ‘교수 자격’(하빌리타치온)을 얻었다. 1894년 프라이부르크대학, 1897년 하이델베르크대학에 임용될 때 베버의 담당은 경제학‧재정학이었다. 베버는 죽기 1년 전 뮌헨대학에 임용될 때에야 사회학 정교수가 됐다. 법학과 경제학에서 시작해 사회학으로 영역을 넓힌 것이 베버의 연구 인생이다. 이 책에 실린 논문들은 1908년부터 1920년 사이에 쓴 것들인데, 하나로 연결하면 베버가 자신을 사회학자로 세우기까지 걸은 긴 전환의 여정을 이룬다. ‘한계효용이론과 정신물리학의 기본법칙’(1908), ‘에너지론적 문화이론들’(1909), ‘이해사회학의 몇 가지 범주에 대하여’(1913), ‘사회학의 기본개념들’(1920)이 그것들이다.
이 논문들 가운데 앞의 두 편은 베버의 사회학이 막 태동하던 때의 학문적 태반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글이다. 가장 먼저 쓴 ‘한계효용이론과 정신물리학의 기본법칙’은 독일 역사학파 경제학자 루요 브렌타노의 저서 <가치이론의 발전>에 대한 서평 형식으로 쓴 글이다. 브렌타노는 경제학의 ‘한계효용이론’을 실험심리학의 ‘자극과 반응’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베버는 브렌타노가 ‘자극’과 ‘욕구’를 구별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욕구라는 포괄적이고 복잡한 개념으로 설명해야 할 것을 자극이라는 단순한 개념으로 환원한다는 지적이다. 베버 주장의 핵심은 심리학에 기초해 경제학을 설명해서는 안 된다는 데 있다. 심리학은 경제학의 토대가 아니다. 경제학은 심리학과는 다른 별개의 학문이다. 이 논의를 연장하면 다른 사회과학, 이를테면 사회학도 심리학에서 독립해 스스로 서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베버의 이런 생각은 앞 시대 사회학에 대한 단호한 비판을 함축한다. 이 사태를 이해하려면 19세기 철학자 오귀스트 콩트(1798~1857)의 사상을 떠올려보는 것이 필요하다. 사회학의 창시자인 콩트는 인간 정신의 발전 단계를 ‘신학적 단계’, ‘형이상학적 단계’, ‘실증과학 단계’로 나누었다. 이 세 단계 가운데 마지막 실증과학 단계에 이르러 인간은 관찰과 증명을 통해 법칙을 이끌어냄으로써 세상을 제대로 이해한다. 콩트는 실증과학도 위계를 설정해 수학-물리학-화학-생물학-사회학 순으로 피라미드처럼 쌓아올렸다. 콩트의 위계에서 생물학은 사회학의 기초가 되므로, 생물학적 선이해가 있어야만 사회도 이해할 수 있다. 브렌타노의 주장은 콩트 사상을 충실히 이어받은 것이었다. 베버는 여기에 단호히 반대한다.
베버의 콩트주의 비판은 두 번째 글 ‘에너지론적 문화이론들’에서 더 분명히 드러난다. 이 글은 당대 화학자이자 철학자였던 빌헬름 오스트발트의 <문화과학의 에너지론적 기초>를 겨냥한 서평이다. 오스트발트의 책은 모든 사회 현상의 바탕을 ‘에너지’에서 찾는다. ‘자연은 에너지의 효율적 사용을 최대화하려 한다’는 법칙을 통해 모든 사회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 오스트발트의 주장이다. 베버는 오스트발트가 사회적 현상을 그 자체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주의적 에너지론에 입각해 분석하는 ‘환원주의 오류’를 범한다고 비판한다. 이런 비판을 통해 베버는 사회이론의 고유성과 독립성을 더 분명히 드러낸다.
이어 4년 뒤에 쓴 논문 <이해사회학의 몇 가지 범주에 대하여>에 이르러 베버 사회학의 본령이 그 윤곽을 내보인다. 그러나 이 논문은 너무 압축적인데다 용어 사용이 번잡해 베버의 구상이 선명히 들어오지 않는다는 약점이 있다. 그런 사실은 베버를 따르던 사회학자 헤르만 칸토로비츠의 편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칸토로비츠가 내용의 어려움을 토로하자 베버는 “제가 아주 난삽하게 쓴 것이 틀림없군요!”라는 답신을 보냈다. 이런 ‘난삽함’을 줄이고 개념 구조를 명확하게 드러내려 분투한 끝에 완성한 것이 <사회학의 기본개념들>이다.
이 두 논문을 순조롭게 이해하려면, 사회학자 페르디난트 퇴니스(1855~1936)가 제시한 ‘공동사회(Gemeinschaft, 공동체)와 이익사회(Gesellschaft, 결사체)’라는 개념을 먼저 알아두어야 한다. 퇴니스는 사회가 공동사회에서 이익사회로 나아간다고 보았는데, 베버는 퇴니스의 개념을 빌려와 자신의 생각을 구축하는 데 적용했다. 퇴니스는 공동사회와 이익사회를 대등한 관계로 보았다. 그러나 베버의 1913년 논문은 공동사회(공동체)를 상위에 두고 그 아래에 이익사회(결사체)를 배정했다. 그러다보니 퇴니스의 개념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었다. 베버는 두 번째 논문에서 ‘사회적 행위’를 상위에 두고 그 아래 ‘공동사회적 행위’와 ‘이익사회적 행위’를 나란히 놓았다. 또 퇴니스의 ‘공동사회-이익사회’를 ‘공동사회화-이익사회화’로 재구성해, 인간의 사회적 행위와 관계를 역동적이고 과정적인 것으로 그려냈다. 이로써 베버의 이해사회학이 명확한 꼴을 갖추었다.
이해사회학을 세운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 위키미디어 코먼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