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위의 집
티제이(TJ) 클룬 지음, 송섬별 옮김 l 든(2021)
소문으로 읽는 책들이 있다. 오래전 알랭 드 보통과 빌 브라이슨을 만난 것도 재미있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벼랑 위의 집>은 청소년 문학을 꾸준히 읽는 지인이 말해준 책이다. 재미있게 읽고 나서 이 책의 독자는 누구일까 궁금해졌다. 공교롭게 작품은 2020년 십 대에게 큰 영향을 미칠 성인 문학에 수여하는 ‘알렉스상’(Alex Award)을 수상했다.
소설은 마법적 힘을 지닌 여섯 명의 아이들이 사는 고아원과 이곳을 심사하려는 마법아동관리부의 라이너스의 이야기가 담긴 판타지다. 전반부는 아이들이 입은 내면의 상처와 고아원의 아서 원장이 지닌 남다른 생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편견에 가득 차 있던 라이너스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변한다. 청소년 문학은 십 대의 이야기를 담는 게 당연하지만 라이너스의 변신은 마치 청소년 문학의 또 다른 본질을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라이너스는 점심시간 광화문 네거리에 가면 숱하게 만날 법한 직장인이다. 배가 나왔고 고혈압도 있는 마흔 살의 남자다. 자신이 맡은 일을 꼼꼼하고 성실하게 처리하지만 있는지 없는지 존재감이 희미하다. 어머니는 “벽에 바른 페인트나 마찬가지로, 그 자리에 있다고 누가 말해주지 않으면 기억조차 희미한 아이”였다고 기억했다. 상사는 으르렁거리고 벌점제도를 만들어 직원들을 감시한다. 라이너스는 한달 동안 고아원을 방문해 정확한 보고서를 쓰는 임무를 맡는다. <벼랑 위의 집>에서 가장 감정이 격하게 흔들리는 대목은 라이너스가 여섯 명의 아이들을 하나씩 만나게 될 때다.
아이들이 지닌 능력이란 특별하다 못해 저주스럽다. 여섯 살 루시의 아버지는 악마다. 다시 말해 어린 루시는 세상의 종말을 가져올 수 있는 무시무시한 적그리스도라고 불려왔다. 천시는 뼈가 없고 해파리처럼 촉수만 있다. 정확히 무엇인지 아무도 모른다. 천시는 ‘너는 겁을 주기 위해 침대 밑에 숨어 있는 괴물’이라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 고아원에 오기 전까지 천시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게 자기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변신이 가능한 샐은 무척 예민하고 라이너스를 보는 것만으로도 겁에 질린다. 왜냐하면 이곳이 샐에게 열두 번째 고아원이기 때문이다.
손가락질을 받던 아이들은 태어난 그대로의 본능과 길들여지지 않음을 괴물이라고 단죄하는 이야기들과 겹쳐진다. 모리스 샌닥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나 이재문의 <몬스터 차일드> 같은 책과 나란히 꽂아둘 수도 있겠다. 천시나 샐 같은 아이는 본 적이 없다는 라이너스에게 아서 원장은 이렇게 답한다. “세상은 기묘하고 근사한 곳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전부 설명하려 들죠? 개인적인 만족감을 위해서?”
어린이를 통제하려는 이유야 여럿일 테지만 아마 어른 자신도 억눌려 있을 확률이 높다. 라이너스는 자기의 일이 통제가 아니라 아이들을 지키는 일이라는 걸 깨닫자 해방된다. 억눌린 마음이 피어난다. 어린이가 자유를 누리려면 어른이 자유로워야 한다. 청소년.
한미화/출판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