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학자 김욱동의 이론과 실재
김영하 작가 <위대한 개츠비> 등
오역 짚어 번역 원칙·자질 논해
“세계문학 대세…번역도 변해야”
김영하 작가 <위대한 개츠비> 등
오역 짚어 번역 원칙·자질 논해
“세계문학 대세…번역도 변해야”

김욱동 지음 l 연암서가 l 1만7000원 번역은 이를테면 사기다. 서로 다른 두 언어가 교환될 때 의미가 옹근 같은 말은 존재하지 않고, 그럼에도 번역자는 시와 소설까지 결락 없다는 듯 바꿔내기 때문이다. (그러고선 일례로 정지용의 시 ‘비로봉2’의 “흰돌이 우놋다”를 ‘cry’ 대신 “laugh”로 잘못 옮겨, 울던 돌은 돌연 웃는 돌이 되어버린다.) 언어 결정론자였던 독일의 빌헬름 폰 훔볼트(1767~1835)가 ‘번역 불가론’을 내세운 까닭인데, 이에 국내 대표적 번역이론 학자이자 번역가인 김욱동 명예교수(서강대 영문학)가 덧붙인 지론은 이러하다. “번역에서 ‘등가의 무게’를 주장한다는 것은 언어의 속성에서 보면 마치 무지개를 붙잡으려고 하는 것처럼 한낱 부질없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번역의 숙명에 관한 성찰에 궁극의 번역을 좇는 역자들의 순정과 노고에 대한 애정이 담길지언정, 무지나 의도에서 초래된 숱한 오역이 위로받을 여지는 없다. 번역의 원칙과 자질을 논하기 위해 김 교수가 든 오역과 졸역의 사례는 차고 넘친다. 고전 명작도 예외가 아니다. <위대한 캐츠비>(피츠제럴드)에서 화자 닉은 여성 골퍼 조던을 만나 연애 감정을 느끼며 “I knew that first I had to get myself definitely out of that tangle back home”이라 구술한다. 근자에 과잉번역 등으로 논란이 된 역서(초판)엔 “나는 우선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나 자신을 구출해 집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로 되어 있지만, 번역가로도 이름 난-게다 피츠제럴드를 스승으로 여겼던-무라카미 하루키는 ‘고향에 남겨두고 온 굴레(しがらみ)를 깨끗하게 정리해야 한다’ 정도로 옮겼다. 여기서 얽매임 내지 속박을 뜻하는 しがらみ(柵, 시가라미)는 일어에서 ‘사랑의 굴레’(こいの柵)란 관용구로도 사용되기에 일어 독자들은 새 여성과의 관계를 위해 고향에서의 연애를 지워야 한다는 닉의 속내를 전달받는 반면, 한국 독자는 그렇지 못하다. 김 교수는 그 밖의 여러 사례를 들며 “피츠제럴드 특유의 간결체 문장에 찬물을 끼얹는 번역”이라거나 “원천어에 대한 지식이 부족할뿐더러 목표어인 모국어 구사력도 그다지 신통치 않다”고 비판한다. 다만 책에 역자가 호명되진 않는다. 25일 <한겨레>에 밝힌바 “역자를 비판하려는 게 책의 목적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작가 김영하의 번역본(문학동네)에 대한 논고로, 2010년대 초반 논쟁 당시 또 다른 당사자라 할 김 교수로선 사실상 처음 공식 발언한 셈이다. 2023년 김영하의 <위대한 개츠비>는 “지금까지 많은 번역본들은 소설의 ‘위대함’에 압도된 나머지, 인물들이 지닌 결점을 적확히 그려내지 못했다. 인물들의 철없는 행동은 우리말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순화되었고 이기적인 의도는 그 맥락이 증발해버리고 말았다”고 여전히 강조하고 있으니, 과거 이 작품을 번역(민음사)했던 김 교수를 포함해 일군의 ‘정본 논쟁’은 진행 중이라 하겠다.

김욱동 서강대 영문학과 명예교수. 연암서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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