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와 혁신의 경계를 가로지른 한 지식인의 기록
남재희 지음 l 민음사 l 3만3000원 언론인이자 정치인 남재희(90)는 대학생 시절 진보 정치인 죽산 조봉암(1898~1959)과 만나 이야기 나눌 ‘영광’을 누렸다고 한다. 이승만 정권에 의해 ‘법살’당한 죽산이 2011년 재심에서 무죄를 받을 때까지 그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년 7월31일 죽산의 추모제”에 참석했고, 50주기에는 신경림 시인의 추모시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조선일보> 논설위원, <서울신문> 편집국장, 4선 국회의원, 노동부 장관 등 엄혹한 시절에 언론인·정치인으로 승승장구했던 이력만 봐서는 의아하게 여겨질 태도와 행보랄까. <시대의 조정자>는 남재희가 인생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그간 여러 매체에 기고했던 글들을 모아 펴낸 책이다. “체제 내 리버럴”이란 평가대로, 그는 늘 보수 정치세력에 속했지만 스스로 “당시의 시대 상식에 맞추어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에 따라 행동”했다고 말한다. 노태우 정부 인수위(민주화합추진위원회)에서 ‘폭동’으로 불렸던 ‘1980년 광주’에 대해 ‘민주화운동’이라는 작명을 내놓고, 노동부 장관으로서 1994년 현대중공업 파업을 공권력 투입 아닌 협상으로 풀어낸 일 등이 대화와 타협을 추구한 ‘조정자’로서 그의 삶을 보여준다. 진보 인사들과도 두루 어울렸던 그는 국외에서 기계적으로 들여올 것이 아니라 한국 현실에서 나름대로 도출해내야 할 것으로 ‘사회민주주의’를 고민한 듯하다. “조봉암은 평화적 남북통일과 수탈 없는 경제를 내세웠을 뿐 무슨 주의를 주장한 적이 없다”, “대문자 아닌 소문자 개혁에 역점을 둬야 한다” 등 한국의 진보 진영에 던지는 고언들이 그러하다. 지난 시기 정치·언론계의 생생한 ‘뒷 이야기’들도 흥미롭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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