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불문학자 김정란의 ‘반독서’
역사적 사실보다 신화의 관점으로
수로 부인, 처용, 원효 등의 설화
고통받는 중생에게 전하는 신성함
역사적 사실보다 신화의 관점으로
수로 부인, 처용, 원효 등의 설화
고통받는 중생에게 전하는 신성함

‘헌화가’의 배경이 되는 삼척시 남화산에 조성된 수로부인 헌화공원. 한길사 제공

우리 민족의 신화적 원형을 찾아서
김정란 지음 l 한길사 l 2만7000원 시인이자 번역가, 문학평론가이자 불문학자인 김정란이 쓴 <꿈꾸는 삼국유사>는 신화를 읽는 다양한 도구를 동원해 <삼국유사>를 기존의 여러 해석과 ‘다르게’ 읽고자 노력한 결과물이다. 이 책의 말을 빌리면 신화 연구는 어느 정도 역사학이고, 어느 정도 사회학이며, 어느 정도 문학이고, 어느 정도 정치학이며, 어느 정도 종교학이고, 어느 정도 철학이며, 어느 정도 심리학인 동시에 어떤 접근으로도 신화는 완전하게 읽히지 않는다. 이 모든 방식의 읽기에 버텨내는 매우 특이한 담론이 바로 신화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삼국유사>인가. 일연의 <삼국유사>는 역사서라기보다 역사의 ‘나머지 일 또는 이야기’를 자처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엄연한 ‘사서’의 위치를 차지한다. 그리고 김정란은 <삼국유사>를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신화의 관점에서 읽어내고자 한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이야기들을 역사와 무관한 신화, 설화로 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이 책은 <삼국유사>에 대한 독법을 제시하는 기존의 여러 학계 논문들을 검토하고 때로는 서로 상충되는 해석까지를 전한 뒤, 새로운 길을 내어 독자를 이끈다. “거의 모든 설화에 대한 나의 독법은 기존의 독법들과 충돌했다”라는, ‘책을 내면서’의 문장대로다. 즉 이 책은 일종의 <삼국유사>를 읽지만 ‘반독서’를 지향하는데, 이 ‘반독서’(contre-lecture)에는 각주가 딸려 있다. “필자가 제안하고 명명한 것으로, 이미 이루어진 모든 독서에 의문을 품고 텍스트에서 대주체의 지배 이데올로기적 호명을 지워내는 읽기다. 텍스트에 숨어 있는 시적 문맥을 이끌어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 결과 악마화되거나 증발되거나 혹은 성적 대상화되는(성애적인 맥락에서만 읽혀온) 여성들을 다시 읽어내는 작업이 가능해진다. 수로부인 이야기도 그렇게 새롭게 해석되는 이야기 중 하나다. 기존 연구자들의 분석은 수로부인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신성해졌다”라는 것이지만, 이 글은 그녀가 “신성하기 때문에 아름답다”라고 주장한다. 수로부인 설화를 두고 <삼국유사>에 묘사된 아름다움(“그 미모가 가히 견줄 자가 없었다”)을 에로티시즘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연구, 수로부인 설화를 불교나 도교 설화로 보는 연구, 수로를 제의를 집행한 무당으로 보는 연구 등이 있다. 수로는 남편 순정공의 부임행차 도중에 꽃을 꺾어 바칠 자 누구냐고 말하는데, 김정란에 따르면 <삼국유사> 전체를 통틀어서 이렇게 당당하게 말하는 여성은 여왕들 빼면 수로 말고는 없다. 에로티시즘을 강조하는 학자들은 꽃을 수로의 성적 욕망의 상징이라고 보고, 제의적 맥락으로 읽는 학자들은 꽃이 지혜를 상징한다고 읽는데, 김정란은 현대 무당들의 꿈 이야기를 채록하는 작업을 한 학자 안영희의 해석을 따른다. 수로 이야기와 놀라울 정도로 똑같은 ‘꽃’이 등장하는 이야기들인 것이다.

일연 표준영정(정탁영, 1984). 일연은 몽골 침략 아래 고통받던 민중에게 이야기를 통해서나마 민족의 자긍심과 희망을 불어넣고자 했다. 한길사 제공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처용무. 처용이 아내를 범하려는 역신 앞에서 노래 부르고 춤을 춰서 귀신을 물리쳤다는 설화에 근거하고 있다. 한길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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