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힘 신작시집
고운기 외 지음 l 몰개 l 1만3000원 시 동인의 시절이 있었다. 군부독재의 폭압에 맞서 시의 날렵한 ‘유격전’이 요긴했던 1980년대가 그러했다. 5월시, 시와경제, 삶의문학, 분단시대 등이 대표적인 동인들이다. ‘시힘’ 역시 80년대에 생겨났는데, 앞서 거론한 동인들과는 다소 결이 달랐다. 첫 동인지 <그렇게 아프고 아름답다>(1985) 서문에서 시힘 동인들은 “건강한 삶에 기반”한 “서정성”을 추구하겠다고 밝혔는데, 문학에서도 당장의 전투력을 요구했던 당대의 분위기에서는 다소 어정쩡한 태도로 여겨졌다. 아무려나 시힘 동인들은 각자의 언어로 80년대를 통과하면서 동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했고, 90년대와 2000년대로 넘어오는 동안 새로운 피를 수혈해 가며 시대 변화에 적응해 왔다. <아름다운 불륜>(1997) 이후 사반세기 만에 낸 열한번째 동인집 <꽃이 오고 사람이 온다>에서 그 점을 확인할 수 있다. 1982년에 등단한 양애경부터 2004년 등단인 김성규까지 20여년의 시차를 지닌 동인들의 개성과 조화가 꽃처럼 난만하다. “뿌리를 깊이 내리지 않는 지피식물에게는/ 기어이 기어서 가고 싶은 곳이 있다/ 덮고 싶은 것이 있다/ 할 말이 있다// (…) // 밤과 발과 뱀과 풀은 나아가고 있다/ 태양 없이도”(나희덕, ‘밤과 풀’ 부분) 나희덕의 시 ‘밤과 풀’은 그의 첫 시집 표제작 ‘뿌리에게’를 떠오르게 하면서 변모와 발전 역시 보여준다. 식물적 상상력이라는 점에서는 두 작품이 통한다 하겠지만, 헌신과 희생의 모성에 대한 무한 긍정(‘뿌리에게’)으로부터 균열과 저항의 생명력에 대한 예찬(‘밤과 풀’)으로 중심이 옮겨졌음을 알 수 있겠다. 이번 동인집에는 동인 열여섯 사람이 두세편씩의 시를 싣고 짧은 시작 노트를 곁들였는데, 나희덕은 시작 노트에서 ‘물활론’을 강조한다. “시인은 새와 나무에게도 영혼이 있다고 믿고 그 존재의 생각과 말을 이해하려고 애쓰며 인간의 언어를 통해서나마 그것을 받아 적으려 노력해왔다.”
시힘 동인들이 지난해 12월 경북 예천군 경북도서관에서 열린 낭독회를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몰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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