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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한국과 일본 학생들 친구 된 게 ‘20년 교류’ 최대 성과죠”

등록 2023-02-08 19:29수정 2023-02-09 02:33

[짬] 한일역사교사교류모임 박성기 회장

박성기 회장이 인터뷰 뒤 사진을 찍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박성기 회장이 인터뷰 뒤 사진을 찍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마주 보는 역사수업>(휴머니스트).

2000년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을 계기로 이듬해 교류를 시작한 한국과 일본 역사교사들이 지난 20년 동안 공동 심포지엄 등을 통해 ‘수업 실천’한 내용을 모은 책이다. 1988년 창립한 한국의 전국역사교사모임(이하 전역모) 소속 한일역사교사교류모임(회장 박성기)과 1949년 출범한 일본 역사교육자협의회(이하 역교협) 한일역사교류위원회의 공동작업인 이 책에는 26건의 역사수업 사례가 실렸다.

일본 쪽 수업을 보면 자국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아 학생들이 배울 수 없거나 제국주의 시절 가해자 일본의 모습을 살피는 내용들이 많다. 고대 홋카이도 선주민 아이누족의 문화나 청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동학농민군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내용을 다룬 수업이 대표적이다. 200년 넘게 조선이 일본에 대규모 통신사를 파견한 내용을 다룬 수업에서는 한·일 사이에 오랜 우호의 역사가 있었음을 알려준다.

한국 쪽 수업 역시 이웃 일본에 대해 학생들이 균형 잡힌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돕는 내용이 많다. 한국만 아니라 일본 쪽 관점도 함께 보여주는 ‘독도 수업’이나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투항해 국방력 강화에 기여한 ‘항왜’ 김충선을 다룬 수업 등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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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 보는 역사수업> 표지.

2001년 한일역사교사교류모임 초대 회장을 지냈고 2019년부터 다시 회장으로 이끄는 박 교사를 지난 3일 서울 사가정역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전역모 2400여 명 회원 중 우리 모임은 29명 정도입니다. 약 4천 명인 역교협 회원 중 한일역사교류위 소속은 약 20명이죠.” 성균관대 사학과 시절 학비 마련을 위해 일본에서 2년 알바를 한 덕에 일본어를 익혔다는 박 회장은 2002년부터 매년 한 차례 열리는 ‘한일역사교육실천심포지엄’의 사전 준비와 인솔, 통역 등을 맡아왔다. 교사 3년 차인 1996년부터 매년 한 차례 재직 중인 고교 학생들과 일본 고교생들과의 교류도 이끌어왔으니 더하면 40차례 이상 일본 교사 및 학생들과 교류했다.

그는 한 달에 한 번 일본 한일역사교류위 회원들이 온라인으로 하는 간담회에도 직접 참가한다. “일본 쪽에서 올해 간토대지진 100년이라면서 우리 쪽에 이 주제에 대해 어떻게 수업하는지 정리한 글을 보내달라고 요청하더군요. 역교협 기관지인 월간 <역사 지리 교육>에 간토대지진 특별호를 내겠다고요. 오는 7월27일 6·25 휴전 70년을 맞아 현장답사를 위해 방한하겠다는 뜻도 알려왔죠.”

그는 한일 역사교사들은 왜 교류하느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상대를 알기 위해서죠. 그래야 이해하고 공감하고 협력할 수 있죠. 제가 학교 다닐 때 일본은 무조건 ‘쪽바리’였어요. 하지만 역사를 공부하면서 그렇게 감정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죠.”

2016년 일본 오키나와에서 열린 한일역사교육교류 심포지엄 모습. 박성기 회장 제공
2016년 일본 오키나와에서 열린 한일역사교육교류 심포지엄 모습. 박성기 회장 제공

그가 보기에 지난 20년 교류는 “한국과 일본 모두 건강한 시민사회 형성의 밑돌이자 동아시아 평화 연대를 위한 작은 한걸음”이었다. 한·일 역사교사들은 심층 토론과 집필을 거쳐 2007년과 2014년에 한일 공동의 역사책인 <마주 보는 한일사>(전 3권)도 함께 냈다. 그는 이런 노력이 일본을 바라보는 한국의 시선에 영향을 미쳤다고도 했다. “역사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실천에 따른 현실의 변화’인데요. 제 생각에 교류의 가장 큰 성과는 한국과 일본 학생들에게 각각 일본과 한국 친구가 생긴 것입니다. (교류에 참여해) 저한테 역사를 배운 한·일 학생은 대략 천 명은 될 겁니다. 이들은 (자국이) 친구의 나라를 침략한다면 분노할 겁니다. 제가 ‘선’이라면 이 학생들은 앞으로 ‘면’이 되어 자기 방식으로 바람직한 한일 관계 형성에 기여하리라 생각합니다.”

한·일 역사교사들 20여년 교류하며
수업실천한 자료집 최근 책으로 발간
“일본 제대로 알아야 이해·공감도 가능
다양한 자료 제시로 역사 사고력 키워
폭넓은 시야에서 한국사 가르쳤으면”

96년부터 고교생 한일 교류도 이끌어

<마주 보는 한일사> 1권이 나온 지도 16년이다. 교육현장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있을까? “그 책에는 정치나 굵직한 사건이 중심인 우리 역사 교과서에는 없는 사람들 이야기가 많아요. 항왜 김충선이나 일본 강점기에 전라도 소작쟁의를 지원한 일본인 변호사 후세 다쓰지 등 정치적 사건을 만들거나 그 속에 감춰진 이들의 이야기이죠. 이를 통해 학생들은 일제 침략의 피해를 보거나 또 반대한 일본인도 많다는 걸 알게 되고 그런 일본인들과 함께 바람직한 한일 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죠.” 그는 이번에 나온 <마주 보는 역사수업>은 “일본 출판시장 상황이 좋지 않아 우선 한국에서 먼저 냈다”고 밝혔다.

2009년 일본 홋카이도를 답사한 한일역사교사교류모임 회원들. 박성기 회장 제공
2009년 일본 홋카이도를 답사한 한일역사교사교류모임 회원들. 박성기 회장 제공

그는 현재 한국 역사교육의 가장 큰 문제를 묻는 질문에는 “세계나 동아시아 등 폭넓은 시야에서 한국사를 배워야 하는 데 미흡한 것 같다”고 답했다. “학생들은 고1 때 수능 필수인 한국사를 배우고 2·3학년에 수능 선택과목인 ‘세계사’와 ‘동아시아사’를 배우는데요. 학생들이 외울 게 많다고 잘 선택하지 않아요. 그래서 한국사가 사실상 고교생의 마지막 역사수업이죠. 우리 학교도 그동안 10년 가까이 개설한 동아시아사 과목이 올해 선택 학생이 줄어 폐지했어요. 많이 아쉽죠.” 그는 미래 세대는 더욱 국외 진출이 활발해질 것이라면서 “학생들이 자신들이 앞으로 활동할 세계 지역과의 관계에서 한국사를 이해할 수 있는 역사교육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우오야마 슈스케 일본 역교협 회원은 이번 책에 “지식주입학습의 대표 사례로 언급된 (일본) 역사수업은 특히 고교 과정에 <역사종합>과 <일본사 탐구> <세계사 탐구> 등이 신설되어 탐구학습이 더욱 요구되고 있다”고 썼다. 이에 대해 박 회장은 “일본이 새로 고교 필수로 지정한 <역사종합>은 세계사와 일본사를 합친 과목으로 일본이 보이는 세계사를 가르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역사종합> 교재를 보니 일본 우월주의나 일본 우익의 정치적 인식은 여전하지만 탐구 질문은 늘었더군요.”

그는 한일역사 교사 모임을 시작한 데는 기존 주입식 역사교육을 피하자는 취지도 있다고 했다. “우리 교육 목표 중 하나는 역사적 사고력 키우기입니다. 그러려면 일본 쪽 자료나 시각 등 다양한 역사적 사실을 학생들에게 제공해야죠.”

인터뷰를 마치며 앞으로 한일 관계가 어떻게 될 것 같냐고 물었다. “큰 희망은 없어요. 지금의 정치적 관계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습니다. 그렇더라도 역사교사로서 뭐라도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해야겠죠. 저는 한일 시민사회의 연대는 더 두터워지리라 봅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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