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생동물
바다로부터 뭍까지, 동물에게서 배우는 마음의 진화와 생명의 의미
피터 고프리스미스 지음, 박종현 옮김 l 이김 l 2만2000원
전작 <아더 마인즈>에서 두족류(오징어, 갑오징어, 문어)를 통해 의식의 기원을 들여다보았던 지은이 피터 고프리스미스가 후생동물에까지 시야를 넓혀 마음(의식)이란 무엇인가로 질문을 확장했다. 후생동물은 원생동물과 짝을 이루는 것으로, 아메바 같은 단세포 생물 이외의 다세포 동물을 총칭한다. 진화론에 의거한 ‘계통수’에서 원생동물 위쪽, 즉 물고기, 양서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 등 인간을 뺀 모든 동물이 여기에 속한다.
이번 책 <후생동물>은, 그러니까, 전작에서 문어와 씨루며 몸을 푼 지은이가 인간을 제외한 모든 동물을 대상으로 팔다리 걷어붙이고 나선 마음 탐사 프로젝트인 셈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대학교의 과학사-과학철학 교수이자 숙련된 스쿠버 다이버인 지은이한테 아주 적절한 주제이겠다. 생명이 바다에서 시작돼 뭍으로 상륙하며 번성한 점을 감안하면 마음의 기원을 찾으려면 바다로 뛰어들 수밖에 없을 터. 수서생물의 세계로 찾아가기 위해서는 고무 잠수복에 산소통으로 변복하고 장시간 수십 미터 수압을 견뎌야 하는데, 이 절차를 무수히 반복하면서 그들의 눈높이에 맞춘다는 게 뭔지를 아니 구비조건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뇌과학자들은 마음이 포유류를 비롯한 몇몇 척추동물에서만 발견되는 대뇌피질에 기반한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대뇌피질이 없는 동물은 여기-내가-있음을 모른다는 건가? 어떤 행동을 해도 경험을 지니지 못한다는 건가? 지은이는 우리더러 모든 경험의 형태가 인간의 경험과 같을 거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권한다. ‘의식(마음)’이라는 단어를 ‘감각된 경험’이라는 뜻으로 사용하는 데도 반대한다. 오랜 수서생물 관찰에서 비롯된 생각이었을 테다. 지은이는 ‘경험 같은 것’, ‘마음 같은 것’이 있다는 가설을 세웠다.
다기장목 편형동물이 해면 위를 이동하고 있다.
해면과 그 위에 쉬고 있는 두툽상어와 호크피시.
지은이를 따라 바닷속으로 들어가 보자. 가장 먼저 지목하는 것은 해면동물. 온대에선 손가락 또는 나뭇가지 모양, 열대에선 굴뚝 모양, 심해에는 타워 모양으로 퍼져 있는데 뇌나 신경세포가 없다. 이들은 일생 붙박이인 채로 아래쪽에서 물을 빨아들여 위쪽으로 뿜어내면서 박테리아를 걸러서 먹는다. 유리해면의 경우 새우와 공생한다. 어려서 몸 안으로 들어와 그 안에서 해면을 청소하는 대가로 보호받고 번식한다. 해면은 활동전위를 일으키는데, 이는 세포 사이의 의사소통에 간여하여 하나의 거대한 세포처럼 존재한다. 지은이는 딱히 아퀴 짓지 않는다.
다음 대상은 산호, 말미잘, 해파리와 같은 자포동물. 해면과 다른 점은 이들이 근육에 기반한 움직임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팔방산호는 뻗기, 해파리는 헤엄을 친다. 균형감각 혹은 중력감각이 발달하였는데, 평형세포라 불리는 작은 결정체가 있는 기관을 이용해 물에서 방향을 잡는다. 지은이는 이처럼 근육에 의한 움직임은 그들에게 주체가 되게 하고 일종의 주체성을 갖게 하였다고 말한다.
지은이와 새우의 조우는 매우 인상 깊다. 한번 만져볼까? 하고 팔을 뻗어 바위 위 새우의 더듬이를 건드렸다. 놀랍게도 새우는 바위에서 내려와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며 지은이 쪽을 바라보았다. 새우는 절지동물에 속하는 갑각류인데 ‘맥가이버 칼’처럼 더듬이와 부속지를 갖고 있다. 더듬이는 주변과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찌르고, 간섭하고, 세상으로 하여금 대답을 하게 만든다. 자아와 다른 존재를 구별한다는 건데, 이는 세상에 새로운 존재방식을 만들어냈다.
전작에서도 다뤘던 문어. 수족관에서 관찰한 이 녀석은 사육사를 알아보고, 옆 수조에서 먹거리를 훔치고, 물줄기를 뿜어 전구를 끄고, 대담하게 탈출하기까지 한다. 자연 속 문어의 행동에서 주목되는 것은 던지기. 다리로 조개껍데기, 해조류, 침적토를 모은 다음 제트분사 장치로 불시에 물을 뿜어 그 모두를 뿌려버린다. 은신처 주변을 청소하거나 자신을 성가시게 하는 다른 동물을 표적으로 하는 행위다. 이는 중앙의 뇌에서 조직된 행동일뿐더러 사회적인 역할이라고 추정된다. 지은이는 그들에게 마음이 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어지는 대상은 어류로 측선계에 눈길이 머문다. 물은 진동과 움직임을 빠르게 전하고 물고기 측선의 관들은 바다를 향해 열려 있다. 그 결과 물고기는 환경과 촉각으로 연결된다. 물고기는 움직일 때 자신을 둘러싼 물결을 느끼는 동시에 그 물결에 영향을 미친다. 아무리 작은 고기라도 지나간 뒤 1분 후까지 흔적이 남는다. 그런 탓에 외부로부터의 영향에서 스스로 움직임이 만든 영향을 걸러내야 한다. 측선계에 연결된 신경 중에 후자에 대한 감각신호를 억제하는 것도 포함돼 있다고 한다. 상어는 측선계로써 전기장을 감지하여 모래 밑에 숨은 물고기를 찾아낸다. 물고기 떼의 군영도 이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같은 종끼리 무리짓기를 선호하며 물총고기처럼 선택적으로 모방한다. 청소고기는 구경꾼이 있으면 부정행위를 덜 하고, 구경꾼은 부정행위 물고기를 피한다. 협력하여 사냥하는 곰치와 농어가 관찰된 바도 있다.
깊은 바다에서 옅은 바다로 옮겨가면서 진행된 프로젝트 결과 지은이는 자신이 세운 가설을 입증한다. 후생동물한테 마음 비슷한 것이 있으며 이들은 경험 비슷한 것을 한다는 것. 종별로 다양한 모양새를 띨 뿐이다.
지은이는 후생동물들이 인간보다 계통수의 아래에 있다고 열등한 존재가 아니라며 지구라는 정원을 공유하는 동료라고 생각을 바꾸라고 권한다. 통증을 느끼느냐의 여부로써 동료성을 판단하지도 말라고 말한다. 감각적이냐 판단적이냐가 다를 뿐 경험의 범주에 속하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책은 계통수가 드리운 그림자가 얼마나 짙은가 실감하게 한다.
임종업 <뉴스토마토> 편집위원, 사진 피터 고프리스미스 촬영, 이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