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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하야시 후미코 지음, 안은미 옮김 l 정은문고 l 1만6500원 “젖먹이 어린애까지 세 아이가 있”고 “오늘 어떨지 내일 어떨지 모르는 칠십 노모”도 있는 화가 나혜석(1896~1948)은 “심기일전의 파동을 억누를 수 없”어서 1년8개월23일간의 세계 여행을 떠난다. 남편에게 주어진 포상이었지만, 식민시대 불안을 달고 산 그에게 여행은 내면의 갈등,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남녀는 평화로울 수 있나’ ‘여자의 지위는 어떠한 것인가’ 등을 해소할 절호의 기회였기에 놓칠 수 없었다. 레닌광장 청년들의 외침을 마주하고 햇볕이 닿으면 황색으로 변하는 아름다운 제네바 호수를 목도하며 전율한다. 그는 귀국해 그 감흥을 고스란히 투영한 <구미여행기>를 발표하는데, 여행이 남성 전유물이다시피 했던 1930년대에 여성 시각으로 그려낸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이와 같은 여행기를 동시대 내놓은 여성이 또 있었으니, <삼등여행기>를 쓴 하야시 후미코(1903~1951)가 그 주인공. “가난을 판다”는 혹평에도 첫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된 그는 책 인세를 밑천 삼아 파리행 기차에 몸을 싣는다. 그도 나혜석처럼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타고 모스크바를 거쳐 파리에 머문다. 여행지가 같은 곳이 많아 둘의 기록은 유사할 듯하지만, 일등칸을 탔던 나혜석과 달리 삼등칸을 탔던 하야시는 자신과 계급 지형이 같은 가난한 이들과의 공감을 대상화해 펜을 든다. 하얼빈에서 “공기가 와삭와삭 유리 같아 상쾌한 기분”을 느끼고 저녁을 해결해준 러시아 할머니에게 긴자의 종이풍선을 선물하면서 그는 ‘여행은 길동무, 세상은 정’이란 말이 참 “그럴싸하다고” 감탄한다. 이 책은 이 두 여성의 같은 듯 다른 여행기를 함께 실어 그 누구든 ‘여행할 용기’가 내재되어 있음을 각인시켜준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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