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페미니즘 대표 사상가
엘렌 식수의 생각과 작품 안내서
차별․배제․억압 질서 해체하는
‘여성적 글쓰기’ 탄생과 변모 살펴
엘렌 식수의 생각과 작품 안내서
차별․배제․억압 질서 해체하는
‘여성적 글쓰기’ 탄생과 변모 살펴
![‘여성적 글쓰기’를 주창한 프랑스 페미니즘의 대표자 엘렌 식수. 위키미디어 코먼스 ‘여성적 글쓰기’를 주창한 프랑스 페미니즘의 대표자 엘렌 식수. 위키미디어 코먼스](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932/848/imgdb/original/2023/0223/20230223504017.jpg)
‘여성적 글쓰기’를 주창한 프랑스 페미니즘의 대표자 엘렌 식수.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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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 블라이스·수전 셀러스 지음, 김남이 옮김 l 책세상 l 1만9000원 엘렌 식수는 뤼스 이리가레, 줄리아 크리스테바와 함께 ‘프랑스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학자다. 식수의 이름을 알린 저작은 1975년에 발표한 <메두사의 웃음>과 <출구>인데, 여기서 식수는 ‘여성적 글쓰기’를 페미니즘 실천 전략으로 제시했다. 식수의 저작 활동은 이후 시‧픽션‧희곡을 비롯해 장르를 규정하기 어려운 수많은 종류의 작품으로 이어졌다. 70권에 이르는 이 저작들은 ‘여성적 글쓰기’라는 식수의 주제를 심화하고 변형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영국 학자 이언 블라이스와 수전 셀러스가 쓴 <엘렌 식수>는 ‘여성적 글쓰기’라는 식수의 개념이 어떤 경로로 탄생해 진화했는지를 알려주는 식수 사상 안내서다. 식수는 1937년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동유럽 ‘아슈케나지 유대인’ 출신이었고 아버지는 지중해 지역 ‘세파르디 유대인’이었다. 어린 시절 식수 집안 문화의 풍경을 채색한 것은 ‘다중언어 사용’이었다. 어머니는 동유럽 유대인 언어인 독일어를 썼고 아버지는 주로 프랑스어를 썼다. 하지만 할머니가 독일어밖에 할 줄 몰랐기 때문에 독일어가 집안의 공용어가 됐다. 여러 언어에 능했던 어머니와 아버지는 대화 중에 프랑스어‧독일어‧스페인어‧영어‧아랍어‧히브리어를 넘나들었다. 성인이 된 식수가 작가로서 채택한 언어는 프랑스어였다. 식수는 아웃사이더로서 프랑스어와 관계를 맺었고, 이 어색한 관계가 글쓰기를 오히려 자극했다고 식수는 말한다. 어린 시절의 식수를 규정한 또 하나의 힘은 반유대주의였다. 1940년 나치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한 뒤 의사였던 아버지는 병원에서 쫓겨났다. 식수 친척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강제수용소에 끌려가 죽음을 맞았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알제리 해방운동의 물결이 들이쳤다. 식민지 알제리 사람들 눈에 식수 가족은 프랑스 제국주의와 한통속이었다. 나중에 식수는 이 식민지 경험을 메타포로 활용해 ‘여성의 몸이 남성의 식민지가 됐다’고 쓴다. 성인이 된 식수는 프랑스로 건너가 영문학을 공부해 제임스 조이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프랑스에서 젊은 식수는 반여성주의라는 또 다른 차별에 맞닥뜨렸다. 그리하여 여성 억압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식수 삶을 관통하는 과제가 됐다. 눈길을 끄는 것은 식수가 어린 시절에 여성의 출산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다는 사실이다. 아버지가 젊은 나이로 죽은 뒤 식수의 어머니는 산파가 됐다. 11살 식수는 어머니를 따라 출산 현장을 다녔는데 “출산하는 여성을 보는 일이 즐거웠다”고 고백한다. 식수 자신도 1955년 이른 나이에 결혼해 몇 년 뒤 딸과 아들을 낳았다. 여성의 출산을 자주 목격한 데 더해 그 자신이 아이를 임신해 출산한 경험은 글쓰기라는 산출 행위를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는 시야를 열어주었다. ‘여성적 글쓰기’의 바탕에 아이를 품어 낳는 경험이 놓인 것이다. 1960년대 프랑스의 학풍과 이론은 식수의 생각이 자라는 데 적잖은 자양분을 주었다. 특히 그 시기에 맹위를 떨친 자크 라캉의 정신분석 이론과 이제 막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자크 데리다의 철학이 식수 사유를 키운 둥지가 됐다. 데리다는 서양 전통 철학을 ‘로고스중심주의’라는 말로 비판했는데, 그 비판은 ‘남성/여성, 문화/자연, 이성/감정’ 같은 이분법을 겨냥했다. 전통 철학은 이 이분법의 두 항 가운데 앞엣것을 우위에 두고 뒤엣것을 폄하하거나 배제했다. 로고스중심주의는 남성성을 우월하게 보는 남근중심주의로 이어진다. 식수는 데리다의 논의를 받아들여 거꾸로 뒤집었다. 로고스중심주의가 남근중심주의를 낳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남근중심주의가 로고스중심주의를 낳는다는 것이다. 식수가 보기에 남근중심주의는 여성성이라는 미지의 대륙에 대해 남성이 느끼는 두려움의 산물이다. <메두사의 웃음>에서 식수는 메두사의 얼굴을 보는 자를 모두 돌로 만드는 ‘메두사 신화’가 남성의 두려움을 분명하게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이 두려움이 남근중심주의를 낳고 이 남근중심주의가 로고스중심주의를 낳는다는 것이 식수가 데리다를 통해 얻어낸 생각이다. 이 로고스중심주의적 이분법을 깨뜨려야만 여성이 남성의 식민지 상태에서 해방될 수 있다. 여기에 식수는 라캉에게서 얻은 생각을 더한다. 라캉의 이론은 ‘상징계’를 중심으로 한다. 상징계는 언어로 이루어진 상징적 질서, 곧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뜻한다. 로고스중심주의는 상징계의 언어 구조 안에서 작동한다. 그러므로 로고스중심주의를 깨려면 이 언어 질서를 바꾸어야 한다. 바로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여성적 글쓰기’다. 여성적 글쓰기는 남성적 언어 구조를 바꾸는 실천 전략이다. 그렇다면 여성적 글쓰기가 도대체 무엇인지 명확히 말할 수 있는가? 이런 물음에 답하는 곳이 대표작 <출구>다. 식수의 대답은 우선은 부정적이다. “오늘날 글쓰기의 여성적 실천을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여성적 글쓰기는 명제와 논리를 쌓아올려 이론화하거나 코드화할 수 없다. 그런 행위 자체가 로고스중심주의다. 그러나 여성적 글쓰기가 무엇인지 정확히 말할 수 없다고 해서 그것이 없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여성적 글쓰기는 분명히 존재한다. 이런 확신과 함께 식수의 이후 글쓰기는 장르를 가로지르는 문학적 작업에 집중되는데, 이 활동이 ‘여성적 글쓰기’의 사례가 됨은 두말할 것도 없다. 식수가 보기에 여성적 글쓰기에는 남성적 글쓰기가 지탱해온 억압적인 질서를 해체하는 해방의 힘이 있다. 그러나 이때 식수가 말하는 여성성과 남성성은 생물학적으로 규정된 성에 한정되지 않는다. 여성적 글쓰기는 여성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남성도 여성적 글쓰기를 할 수 있다. 식수는 여성적 글쓰기를 감행한 남성 작가로 셰익스피어와 클라이스트를 거명한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전통과는 다른 것을 해낸 시인들이 있다. 사랑을 사랑할 수 있는 남성들, 그래서 타자들을 사랑하고 타자들을 원할 수 있었던 남성들.” 관습에 저항한 이 남성들은 자기 안에서 타자 곧 여성성을 발견해 회복한 사람들이다. 그렇게 보면 식수의 여성적 글쓰기는 여성과 남성을 모두 인간으로 해방하는 실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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