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 9년 박지음 두번째 소설집
5·18, 여순사건, 장애·이민 차별
비틀린 현실과 과거사 체감토록
‘변신’의 미학…집요한 글쓰기
5·18, 여순사건, 장애·이민 차별
비틀린 현실과 과거사 체감토록
‘변신’의 미학…집요한 글쓰기

박지음 지음 l 아시아 l 1만5000원 독후감이 다소간 불편해질 수도 있는 단편 ‘화랑곡나방’을 먼저 따라가 본다. 소설가 박지음(43)의 두번째 소설집 <관계의 온도> 속 마지막에 배치된 작품이다. 16살 사내는 수음 말곤 할 줄 아는 게 없는 자처럼 한심하고 무력한 일상을 보낸다. 그의 엄마는 몇만원의 해웃값을 사정하며 거리에서 몸을 판다. 이 설정이 얼마나 개연성을 갖는가 따질 수도 있겠다. 이들이 사채로 아버지와 헤어지고 “사채는 피를 타고 흐”른다며 그들을 좇는 검은 양복들을 피해 불법체류와 신용불량, 가난이 다글다글한 도시 변두리로 숨어들어왔다는 배경이 더 구체화되기 전까지. 엄마한테도 욕을 서슴지 않는 사내가 ‘악마’로 기어코 진화하는 경위는 두 가지다. 약속한 몸값 삼만원을 주지 않은 남자에게 두들겨 맞기까지 한 엄마를 보게 된 이후, 엄마와 관계 맺는 남자들을 벽돌로 쳐 금품을 갈취하기 시작한다. 그중 시시티브이(CCTV)에 찍힌 폭행 장면이 뉴스로 보도된 뒤 되레 사채꾼들에게 위치가 탄로 나고, 칼로 위협을 당한 뒤로 사내는 더 잔악해진다. 며칠 남지 않은 15번째 생일을 넘겨 자살을 하면 받게 되는 사망보험금(만 15살 미만의 경우 사망보험금이 발생하지 않는다)으로 빚을 탕감하면 엄마는 살려주겠다는 약속과 함께다. “하루하루 악랄해지느라 바쁜 몸”이 되어가는 사내의 심리나 행적이 얼마나 개연성을 갖는가 따질 수도 있겠다. 단순히 현실을 재현하는 데 목적이 있다기보다, 현실을 ‘감각’시키는 데 문학의 존재 증명이 있다는 점을 상기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문학 속 ‘변신’은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엘리아스 카네티(불가리아 출신 영국 작가)에게 그랬듯 세계를 바라보고 감각하고 사유하는 고집스러운 방식이고, 사내의 위악적 변신은 우호적이지 않은 세계는커녕 대놓고 반목적인 세계를 들추기 위한 최후이자 최선의 방식인 셈이다. 무엇보다 모르는 현실, 나아가 특권을 구가하는 악마들의 단죄되지 않아 감각될 수도 없는 고집스러운 세계는 겨우 드러난 사례만으로도 너무 많지 않은가. ‘화랑곡나방’ 사내가 악마화되는 경위는 둘이지만 이유는 하나다. 위선과 타락의 기성사회에서 기행하는 청소년 홀든 콜필드에게 수호해야 할 대상으로서 가장 순수한 여동생 피비가 그랬듯, 죽음을 무릅쓰고 “엄마가 나를 버리지 않고 달고 온 것에 감동”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엄마를 위해) 팔 수 있는 게 엄마밖에 없는 남자”라는 청소년에겐 엄마만이 지켜야 할 영토의 전부다. “…나는 이 동네를 모두 털어다가 엄마한테 주고 싶었다. 엄마는 돌아누워 잠을 잤고 나는 이불 속에서 고추에 난 털을 만지작거렸다.” ‘변신’이란 게 밥 한번 지어 먹일 겨를 없던 엄마를 상기시키는 쌀통 속 바글바글한 쌀벌레의 것, 그러니까 고작 “온종일 납작 붙어 있다가 아쉬운 듯 짝짓기”나 하는 화랑곡나방으로의 과정일지언정 말이다.

내년 등단 10년을 맞는 박지음 작가. 아시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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