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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생각] 소 도축 금지에도…소 잡아 성균관 먹여 살린 노비들

등록 2023-03-03 05:00수정 2023-03-03 17:03

강명관, 성균관 노비 반인의 쇠고기 장사 연구
노동력·영업세 수탈 겹쳐…지배체제 무능·실패
조선은 소의 도축과 매매를 원칙적으로 금지했지만, 쇠고기 식용 문화는 갈수록 확산됐다. 이를 보여주는 성협의 <풍속화첩> 가운데 ‘야연’(위쪽). 함경남도 흥원에서 1911~1912년께 백정들의 도축 작업을 담은 사진(아래쪽).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푸른역사 제공
조선은 소의 도축과 매매를 원칙적으로 금지했지만, 쇠고기 식용 문화는 갈수록 확산됐다. 이를 보여주는 성협의 <풍속화첩> 가운데 ‘야연’(위쪽). 함경남도 흥원에서 1911~1912년께 백정들의 도축 작업을 담은 사진(아래쪽).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푸른역사 제공

노비와 쇠고기
성균관과 반촌의 조선사
강명관 지음 l 푸른역사 l 3만9000원

노비와 쇠고기, 이 두가지를 소재로 삼아 조선이란 나라의 진면목을 드러낼 수 있을까. 별 관계 없어 보이는 이 둘은 조선의 국가 이데올로기를 상징하는 기관인 성균관에서 만나, 지배체제가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수탈했는지, 피수탈자는 어떻게 대응했는지, 국가의 통치는 어떻게 실패했는지 등을 낱낱이 드러낸다. <조선의 뒷골목 풍경> <열녀의 탄생> 등 여러 저작에서 역사를 세밀한 풍경으로 그려내는 한편 그 속에서 지배체제의 본질을 드러내온 한문학자 강명관(전 부산대 교수)이 새 책 <노비와 쇠고기>에서 펼친 작업이다. 지은이는 스스로 만들어낸 모순에서 나오는 폐해를 감당할 능력은커녕 의지조차 없던 지배체제의 실패를 냉정하고 꼼꼼하게 까발린다.

먼저 쇠고기 쪽에서 출발해본다. 상업을 억제하고 농업에 집중하려 했던 조선은 건국 때부터 ‘축력 보호’ 목적으로 소의 도축을 강력히 금지했다. 조선 최초의 법전 <경제육전>이 이를 법령화했다. 그러나 저절로 죽은 소의 고기는 관아의 허가를 받아 매매가 가능했고, 무엇보다 지배계급부터 쇠고기를 즐겨 먹었다. 15세기 후반이면 이미 쇠고기 식용이 보편화되어 법령이 사문화됐다. 서울의 ‘현방’(懸房)과 지방 일부 기관들은 소 도축·판매를 사실상 허용받았다. 사사로운 불법 도축(사도·私屠)은 그보다 더 횡행했고, 그 이익이 크다 보니 아예 관이 직접 나서거나 민관이 한패를 먹고 사업을 벌이는 경우도 빈번했다. 18세기 기록엔 한 해 도살되는 소가 39만마리에 달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소와 말을 도축하는 자는 장 100대에 전가사변(가족 모두를 변경으로 옮겨 살게 하는 형벌)에 처한다’(<대전후속록>, 1543년) 등 우금(牛禁) 원칙은 한번도 바뀌지 않았다. 갑오개혁 이후인 1895년 12월3일 ‘포사규칙’이 제정되고서야 폐기된다. 국가가 ‘사실상’ 허용했다 해도 소 도축·판매는 원칙적으로 불법이므로 그 대가를 치러야 했다. 서울의 현방은 형조·사헌부·한성부(이를 ‘삼법사’라 한다)에 영업세 성격의 벌금, 곧 ‘속전’(贖錢)을 대신 냈다. 이는 사도에도 적용되어 점차 법 자체가 무력화됐다. 사도를 범해 유배를 가던 자가 압령하던 군사를 위협해 집으로 돌아와 다시 소를 도축한 사례도 있다. 임병양란 이후 누구나 값만 치르면 쇠고기를 사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쇠고기 식용이 보편화됐으나, 법·제도와 그 집행은 현실과 멀리 떨어져 있던 것이다. “현실의 변화에 대한 대응력을 상실한 것이 조선 후기 사족체제의 특징이었다.”

&lt;태학계첩&gt;(1747)에 수록된 ‘반궁도’. 성균관의 건물 구조와 배치를 평면도 형식으로 재현한 가장 오래된 시각 자료다.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누리집 갈무리
<태학계첩>(1747)에 수록된 ‘반궁도’. 성균관의 건물 구조와 배치를 평면도 형식으로 재현한 가장 오래된 시각 자료다.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누리집 갈무리

&lt;상춘야연도&gt; 그림.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푸른역사 제공
<상춘야연도> 그림.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푸른역사 제공

이번엔 노비 쪽에서 출발해보자. 신분제 사회인 조선에서 노비는 최하층에 위치한다. 지은이가 주목한 것은 “성균관 주변에 거주하며 성균관에 직접 신체노동을 제공”하는 등 독특한 성격을 지닌 ‘반인’이다. 반인은 ‘반궁(대학)이 있는 마을’(반촌)에 사는 이들이란 뜻으로, 성균관에 구속되어 반촌을 떠날 수 없고 ‘면천’(양인이 되는 것)이 불가능한 대신 이를 활용해 집단적인 정체성을 형성하고 나름의 생존전략을 구사할 수 있었다. 앞서 말한, 서울 지역에서 소 도축·매매를 사실상 허용받은 ‘현방’의 영업을 이들 반인이 맡게 된 것은 그런 맥락 위에 놓인다. 성균관은 최고 교육기관이자 국가 이데올로기의 교조에게 제사를 올리는 제의소로서 상징적 의미가 크다. 임병양란을 거치며 재정이 크게 어려워지자, 국가는 이익이 큰 현방 독점 운영권을 반인에게 줬다. 반인의 노동력을 수탈하는 한편, 성균관 재정에 대한 책임까지 그들에게 떠넘긴 셈이다.

이익이 큰 사업을 독점하게 된 것은 반인이 구사한 생존전략의 성공이기도 했다. 성균관 토지 등에서 나오는 수입이 현격히 줄어들자 학생들의 찬거리 등을 핑계로 현방 영업을 꿰찬 것이다. 문제는 그 대가 역시 혹독했다는 데 있었다. 현방은 1638~1653년 사이 출현했는데, 한성부(오늘날로 치면 서울시)와 사헌부(오늘날로 치면 감사원)가 곧장 ‘소 도축·판매는 불법’이라며 속전을 받아갔고 형조(오늘날로 치면 법무부)도 여기에 끼어들었다. 이들 ‘삼법사’가 ‘금란’(禁亂·불법행위 단속)으로 현방에서 거둬가는 돈은 1704년 한해 7700여냥에 달했고, 여기에 성균관의 자체 수탈, 궁방(왕가)의 수탈까지 더해지며 현방이 한해 수탈당하는 전체 금액은 조선 후기로 갈수록 2만냥, 3만냥, 4만냥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삼법사가 현방을 수탈한 이유도 고약하다. 기관 내 말단 일꾼들의 삭료가 법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고 이를 감당할 재원도 없어, 금란으로 거두어들이는 벌금으로 이를 충당했던 것이다. 현방은 그중 가장 큰 먹잇감이었다.

경성부 도살장 내부 모습. 1917년.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푸른역사 제공
경성부 도살장 내부 모습. 1917년.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푸른역사 제공

경성부 도살장 내부 모습. 1917년.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푸른역사 제공
경성부 도살장 내부 모습. 1917년.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푸른역사 제공

노비와 쇠고기가 성균관에서 만나 이처럼 온갖 문제들을 드러냈으나, 이를 해결할 능력과 의지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반인들은 성균관을 움직여 속목 감축, 공채 제공 등을 요청하며 나름의 생존전략을 구사했고 나중엔 철도(파업), 궐공(유생 식사 제공 거부) 등을 벌이기도 했지만, 받아들여진 건 거의 없었다. 지은이는 1704년 ‘속목(속전) 감축’을 요구한 성균관 대사성 조태구의 상소, 1862년 궁방 수탈을 막으려 한 ‘현방구폐절목’ 제정과 시행, 1895년 근대적 변화의 시작인 ‘포사규칙’ 제정에 이르기까지 조선 후기 조정에서 펼쳐진 온갖 정책 논의들을 지루할 정도로 꼼꼼하게 다룬다. “자기반성과 개혁을 기대할 수 없는, 낡고 화석화된 관료기구”의 작동을 직접 느껴보라는 의도다. 해결책은 단순했다. 성균관이 중요하면 근본적인 재정 확보를 위한 대책을 세우면 된다. 쇠고기 식용이 기왕 보편화됐다면 법·제도를 그에 맞게 바꿔야 한다. 말단 관리들의 생계를 위한 금란이 문제라면 급료를 새로 책정하는 등 재정을 가다듬으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법 혹은 제도와 현실과의 괴리를 좁히기 위해 고민하기보다 방치해두는 것이 사족체제의 유일한 대응이었다.” 그에 뒤따르는 고통은 오직 아래로, 아래로만 흘렀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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