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어치료사가 쓴 말하기와 마음 쌓기의 기록
김지호 지음 l 한겨레출판 l 1만6000원 내 안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을 표현할 수 없을 때, 내 마음이 상대방의 마음에 닿지 않을 때를 떠올려 보자. 속상하고, 답답한 마음에 좌절한다. 그 어느 때보다 외로울 것이다. 저자는 지체·발달·청각장애나 말더듬이 있어 매 순간 좌절하고 외로워하는 아이들을 18년째 만나온 언어치료사다. 그가 만난 어린이·청소년 25명의 이야기를 담담히 전하며 조금은 다른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이어케, 이어케” “간다!” “어, 아…(몸짓)”…이 세계는 침묵이 대부분을 채우거나 명사나 동사만 존재하는 곳이다. 중·고등학생의 언어능력도 한두살 아이 수준인 경우가 많다.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10년 동안 저자는 이들과 꾸준히 만나며 울고, 웃고, 자신을 돌아본다. 아이들의 특성을 파악하고 믿음을 쌓아도, 한순간에 아이들은 등을 돌리고 화를 낸다. 한국 사회의 그림자도 자연스레 드러난다. 어둑한 반지하방에서 점점 야위어가는 양육자를 만날 때마다, 불친절하고 허술한 정부의 복지체계를 맞닥뜨릴 때마다 장애 아동 가정의 고립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일’에 대한 희망은 끝내 놓지 않는다. “나는 네가 보통의 아이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랐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영영 한마디도 못 하고 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절망감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기로 했다. 네 뜻을 알아주는 사람이 더 많아지면 되겠다. 손짓과 몸짓으로도 대화할 수 있으면 되겠다. 이름 붙일 수 없고 말하여질 수 없지만 네 가슴에 새겨질 아름다운 무늬를 느끼고 공감할 수 있으면 되겠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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