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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봄이 온다, 시와 그림 되어 꽃이 다가온다 [책&생각]

등록 2023-03-10 05:00수정 2023-03-10 09:44

우리 꽃 52가지 노래한 한시들
그림과 공예 도판 곁들여 편집

조선 시대 서울은 살구꽃 천지
선비들은 매화와 산수유 편애
이방자 <채색 진달래>.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태학사 제공
이방자 <채색 진달래>.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태학사 제공

알고 보면 반할 꽃시
성범중·안순태·노경희 지음 l 태학사 l 1만9500원

북상하는 화신(花信)에 목을 빼는 무렵이다. 매향이 그리워 코를 벌름거리고 공연히 가슴이 콩닥거리다가는 그예 꽃을 맞으러 남쪽으로 걸음을 놓는 이들 많을 것이다. 꽃이라고 다 꽃이 아닌 것이, 길고 삭막한 겨울 끝에 만나는 봄의 첫 꽃들은 유난히 반갑고 느껍다. 옛 선비들이 매화와 산수유꽃의 고고한 성정을 아낀 까닭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고야의 얼음 같은 살결에 눈으로 옷 지어 입고/ 향기로운 입술로 구슬 같은 새벽이슬 마시네./ 응당 속된 꽃들 봄에 붉게 물드는 것 싫어하여/ 요대를 향해 학 타고 날아가려는 게지.”(이인로, ‘매화’)

“굳은 절개 고고함이 백이와 같거늘/ 어찌 도리화와 같은 시기에 봄을 다투겠는가?/ 고즈넉한 산속 동산 이르는 사람 없어도/ 가득한 맑은 향기에 그저 절로 알겠거니.”(곽진, ‘수유꽃’)

울산대 국어국문학부에서 고전문학을 가르치다 정년퇴직한 성범중 명예교수와 같은 학부 안순태·노경희 교수가 함께 쓴 <알고 보면 반할 꽃시>는 52가지 우리 꽃을 노래한 한시를 모아 설명한 책이다. 겨울에 피어 봄을 재촉하는 동백꽃에서부터 가을을 장식하는 억새꽃과 국화까지 피는 순서대로 장을 나누었고, 해당 꽃을 담은 그림과 공예품의 도판을 곁들여 생생한 느낌을 더했다.

김홍도 &lt;연꽃과 고추잠자리&gt;. 간송미술관 소장. 태학사 제공
김홍도 <연꽃과 고추잠자리>. 간송미술관 소장. 태학사 제공

“화려하게 핀 꽃이 너무 흔해서 그런지 전통적으로 선비들은 이 꽃(=복사꽃)을 자두꽃과 한데 묶어 ‘도리화’라 부르며 매우 천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다른 한편으로 민간에서는 복숭아나무 가지에 귀신을 쫓는 힘이 있다고 믿었고, 복사꽃 우거진 곳은 이상향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조선 시대에는 궁궐에 앵두나무가 많았다. 세종은 특히 앵두를 좋아했는데, 그의 맏아들인 문종은 세자 시절 경복궁 후원에 손수 앵두나무를 심어 앵두가 익으면 따다가 세종에게 바쳤다. 지금도 경북궁과 창덕궁, 창경궁 등에서는 앵두나무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서울의 봄을 상징하는 꽃은 역시 살구꽃이었다(4월의 평양에는 지금도 벚꽃이 아닌 살구꽃이 흐드러지게 핀다). 자하 신위는 “무릇 도성의 십만 호가, 봄 들어 온통 행화촌이네”라 읊었다.

신명연 &lt;산수화훼도&gt; 중 ‘배꽃’.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태학사 제공
신명연 <산수화훼도> 중 ‘배꽃’.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태학사 제공

“문득 가지에 눈송이 붙었는가 싶더니/ 맑은 향기 풍겨 와 꽃인 줄 알았네./ 겨울 매화의 구슬 같은 고결함 물리치고/ 농익은 살구꽃의 비단 같은 화려함 비웃네.”

이규보의 이 시의 주인공은 배꽃이다. “아리따운 여인 비단 소매 걷고 흰 팔 드러내어/ 은근히 미소 지으니 마음을 몹시 녹이네”라는 결구에서 보듯 배꽃은 여인의 은근한 아름다움에 자주 견주어지곤 했다. 그런가 하면 시인들은 꽃의 생리와 형용에 자신의 심정을 투사하고는 했다. 묵정밭 옆에 피어난 접시꽃을 두고 “천한 곳에 태어남 스스로 부끄러워/ 버림받는 그 한을 참고 견디네”라 노래한 최치원, 또 소나무를 타고 올라간 등꽃을 가리켜 “보는 이는 근본이 다름을 알지 못하고/ 같은 무리가 서로 용납한다 말하네”라고 한 조선 중기 문인 김우급이 대표적이다.

남계우, &lt;화접도&gt; 2폭 중 ‘모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태학사 제공
남계우, <화접도> 2폭 중 ‘모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태학사 제공

책에는 서유구의 <임원경제지>에 소개된 접시꽃 시전지 만드는 법, 동백씨 기름의 용도, 살구씨의 독성에 관한 논란 등 꽃에 얽힌 부가적 지식들도 쏠쏠하다. 정년을 맞는 선배 교수와 후배 교수들이 매주 모여서 ‘꽃시’를 감상하고 관련 자료를 섭렵한 끝에 꽃처럼 어여쁜 책을 꾸며 내놓았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전(傳) 허난설헌 &lt;작약도&gt;.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태학사 제공
전(傳) 허난설헌 <작약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태학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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