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위도 지역에서 지구를 도는 강한 바람이 휘어지며 불어서 생긴 구름 대형 ‘제트기류 권운’. ‘구름감상협회’ 21번 회원 글렌 프리드먼 사진. 김영사 제공
구름관찰자를 위한 가이드
신기하고 매혹적인 구름의 세계
개빈 프레터피니 지음, 김성훈 옮김 l 김영사 l 2만2000원
“자네는 누구를 가장 사랑하는가, 수수께끼 같은 사람아, 말해보게. 아버지, 어머니, 누이, 형제?”
샤를 보들레르의 산문시집 <파리의 우울> 맨앞에 실린 작품 ‘이방인’에서 주인공인 이방인은 이런 질문을 받는다. “내겐 아버지도, 어머니도, 누이도, 형제도 없어요”라는 그의 대답에 질문자는 거듭해서 묻는다. 친구들은? 조국은? 미인은? 황금은? 이 모든 질문에 이방인은 하나같이 부정적으로 답하고, “그럼 자네는 대관절 무엇을 사랑하는가”라는 마지막 질문에 이런 답을 내놓는다. “구름을 사랑하지요… 흘러가는 구름을… 저기… 저… 신기한 구름을!”
<구름관찰자를 위한 가이드>의 지은이 개빈 프레터피니를 이 사람의 후예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는 2005년 ‘구름감상협회’를 결성해 회장을 맡고 있으며, 이 책 말고도 <구름수집가의 핸드북> <날마다 구름 한 점> 같은 책을 썼다. <구름관찰자를 위한 가이드>는 구름이 형성되는 원리, 속성 및 형태에 따른 구분, 구름을 둘러싼 역사적·문화적 맥락 등을 맛깔나는 입담으로 풀어놓아 독자를 흥미로운 구름의 세계로 안내한다.
‘구름의 화가’로 불리는 영국 화가 존 컨스터블(1776~1837)의 작품 ‘위븐호 공원’. 위키미디어 코먼스
책 앞머리의 ‘구름감상협회 선언문’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우리는 구름이 부당한 비난을 받고 있으며 구름이 없다면 우리의 삶도 한없이 초라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렇게 시작하는 선언문은 구름에 대한 사랑 고백이자 구름의 권리 회복을 위한 투쟁 선언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맑고 깨끗한 하늘을 좋아하며, 비바람이나 눈보라를 수반하는 구름에 적대적이다. 특히 지은이의 나라 영국처럼 날씨의 변덕이 심한 곳에서는 구름 끼고 흐린 날보다는 화창한 햇빛을 선호하게 마련이다. 이런 ‘파란하늘주의’에 맞서 구름의 아름다움과 쓸모를 알리는 것이 이 책의 일차적 목적이다. “두둥실 떠가는 솜사탕 같은 뭉게구름이 깔린 햇살 좋은 나른한 오후가 구름 한 점 없는 밋밋하고 단조로운 하늘보다는 훨씬 나은 법이다.”
구름은 동식물 분류법과 마찬가지로 라틴어를 사용하는 린네식 분류법을 따른다. 높이와 겉모습을 기준으로 크게 하층운과 중층운, 상층운으로 나누고 모양에 따라 다시 적운, 적란운, 층운, 층적운(이상 하층운), 고적운, 고층운, 난층운(이상 중층운), 권운, 권적운, 권층운(이상 상층운) 열 개 속으로 분류한다. 각 속은 또 종과 변종, 부속구름 및 부가적 특성에 따라 세분화되는데, 가령 적운만 해도 편평운, 중간구름, 봉우리구름, 조각구름, 방사구름, 삿갓구름, 면사포구름, 꼬리구름, 강수구름, 아치구름, 편난운, 깔때기구름이라는 하위 범주를 거느리는 식이다.
‘구름의 화가’로 불리는 영국 화가 존 컨스터블(1776~1837)의 작품 ‘건초 수레’. 위키미디어 코먼스
책에는 변종과 부속구름을 포함해 100여종의 구름에 관한 설명과 사진이 실려 있어 이해를 돕는다. “가장 극적이고 아름다운 종” 렌즈고적운, 흔히 볼 수 있는 구름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권운(새털구름), “두꺼운 담요 같은” 난층운, “따분한 구름” 고층운, “지루하고 답답한” 층운 등이 경쟁하듯 각자의 특성을 뽐내며 등장한다. 구름은 자연의 시이자 로르샤흐 검사 이미지라며 한껏 칭송하던 지은이도 영국인들을 괴롭히는 안개 같은 구름 층운에 대해서는 싫은 기색을 감추지 않는다. “‘구름감상협회’의 창시자로서 나는 종류를 따지지 않고 모든 형태의 구름을 사랑한다고 믿고 싶다. 하지만 런던의 추운 2월 아침에 하늘 가득 층운이 깔려 있으면 솔직히 정말 우울한 기분이 든다.”
높이와 모양이 어떠하든 모든 구름은 기본적으로 물방울의 집합이다. 다만 물방울의 크기가 매우 작아서 땅으로 떨어지지 않고 하늘에 떠 있는 것인데, 구름을 이루는 물방울 하나의 직경은 천분의 몇 밀리미터 정도에 불과하다. 물방울의 크기가 커지면 비나 우박 또는 눈이 되어 땅으로 떨어지는데, 그렇게 지표면에 떨어지는 물방울의 크기는 직경이 백분의 일 밀리미터 단위인 가는 안개비부터 0.2~0.5밀리미터 정도 되는 가랑비, 0.5밀리미터가 넘는 빗방울까지 다양하다. 빗방울의 직경은 보통 1~5밀리미터 사이다.
“눈치 없이 너무 오래 머물러 미움을” 사는 층운 같은 구름이 없지 않지만, 구름의 본질은 변화와 다양성에 있다. “모호하고, 덧없고, 변덕스럽기 그지없”어서 분류에 애를 먹긴 해도 “구름관찰자는 구름의 반항적인 성격을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지은이는 구름을 변호한다. 하늘을 보면 구름은 가만히 머물러 있는 것 같지만, “구름은 언제나 요동치고 있다. 대기의 기온과 습도의 변화를 반영하며 한 유형에서 다른 유형으로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구름의 이동과 변화를 관찰하는 일은 정확한 날씨를 예측하고 태풍과 같은 기상 사태를 예방하는 데에 필수적이다. 심지어 어떤 이는 구름으로 지진을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실제로 ‘지진운’ 형성을 근거로 2003년 말 이란 남동부 도시 밤에서 발생한 리히터 규모 6.6의 지진을 예측하기도 했다.
2차대전 중 제너럴일렉트릭 연구소가 미국 정부의 의뢰를 받아 시작한 인공강우 연구는 1960년대 베트남전쟁 당시 실제로 쓰였다. 연구 초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버나드 보네거트는 작가 커트 보네거트의 친형이기도 한데, 그 자신 제너럴일렉트릭의 홍보 부서에서 일하며 형의 연구를 지켜본 커트는 <고양이 요람>이라는 에스에프 소설에서 “구름 씨 뿌리기와 놀라우리만큼 비슷한 화학 과정을 설정”하기도 했다.
‘애완용 해마가 자기를 무시하고 고개를 돌려서 화가 난 히말라야 설인’ 구름. 김영사 제공
영화 역사상 최초로 특수효과 구름을 설득력 있게 표현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미지와의 조우>(1982), 2002년 스위스 엑스포에 등장한 인공 안개 빌딩, “길고 매끄러운 튜브 모양으로 지평선 이쪽에서 저쪽까지 뻗어 있”는 층적운 ‘모닝글로리’ 위를 서핑하듯 비행하는 활공기 체험 등 책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하다. 비행기의 자취를 따라 생기는 비행운이 구름의 한 종류로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이채로운데, 비행기가 내뿜는 이산화탄소보다 오히려 비행운이 온난화에 더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설명이 놀랍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