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 속의 영원
저항하고 꿈꾸고 연결하는 발명품, 책의 모험
이레네 바예호 지음, 이경민 옮김 l 반비 l 2만6000원
기원전 1600년께 고대 이집트의 수술 기록을 담은 파피루스 문서. 위키미디어 코먼스
스페인의 고전문헌학자 이레네 바예호의 <갈대 속의 영원>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를 중심으로 책을 둘러싼 모험을 그린다. 책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장서 수집을 위해 말을 타고 험로를 달렸던 ‘책 사냥꾼’들의 이야기를 담은 프롤로그로 시작한다.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같은 마케도니아 출신으로 이집트의 파라오가 된 프톨레마이오스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세계 최고의 도서관으로 만드는 데에 진력한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였던 데메트리오스를 데려와 도서관의 책을 수집하고 정리하는 일을 맡겼다. “데메트리오스는 그리스어로 된 책을 모으기 위해 대리인들에게 큰 가방과 칼을 들려 아나톨리아 반도와 에게해의 섬과 그리스로 보냈다.” 그 덕분에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당대에 존재하던 거의 모든 책을 소장하”게 되었다.
프톨레마이오스 3세 시절에는 두 번째 도서관인 세라페움을 세웠는데, 이 도서관은 부유한 자나 가난한 자 또는 자유인과 노예를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개방되었다. 그러나 로마 제국의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알렉산드리아를 침공하면서 도서관은 불에 타 파괴된 것으로 전해지는데, 지은이는 도서관이 화재로 없어졌다기보다는 지원 중단과 약탈 및 횡령 등으로 “천천히 붕괴했다”는 쪽에 무게를 싣는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중심을 이루기는 하지만, 책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들이 곁들여진다. 최초의 책인 점토 태블릿, 최초의 문자와 알파벳의 발명, 국제적 스타가 되었던 로마의 작가들, 베수비오 화산재 밑에서 발견된 여행가방 속의 파피루스 두루마리들, 기독교의 책과 도서관 파괴, 나치 수용소의 도서관, 금서와 제목 이야기 등이 다채로운 책의 세계로 독자를 안내한다. 어린 시절 따돌림을 당했던 아픔을 책 읽기로 극복했던 경험에서부터 독재 치하의 은신처였던 서점에 얽힌 부모님의 추억, 피렌체의 메디치 리카르디 궁전에서 만났던 페트라르카 양피지 사본의 강렬한 인상 같은 지은이의 개인적 경험은 친근함을 더한다.
번역본으로 500쪽이 넘는 두툼한 분량의 책은 애팔래치아산맥의 비탈과 계곡을 말을 타고 달리던 사서들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1934년부터 1943년까지 미국 공공사업진흥국에 소속된 사서 1천여 명은 도로도 전기도 없는 빈곤한 동부 산악지대를 찾아 주민들에게 직접 책을 전달했다. 대부분이 여성이었던 이 사서들은 책의 프롤로그에 등장했던 책 사냥꾼들의 모습과 포개지면서 수미상응의 효과를 자아낸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파피루스에 필사된 그리스어 신약성경. 위키미디어 코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