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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세로’가 준 깨달음…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동물은 없다

등록 2023-03-31 10:13수정 2023-03-31 10:33

[책&생각]

동물학대의 사회학
동물학대 연구는 왜 중요한가?
클리프턴 플린 지음, 조중헌 옮김 l 책공장더불어(2018)

지난 23일 어린이대공원 내 동물원에 살던 얼룩말 ‘세로’가 울타리를 박차고 나와 거리를 활보한 사건이 있었다. 아프리카 사바나 들판을 자유롭게 뛰어다니며 살아야 했을 얼룩말이 백주대낮 도심에 나타난 사건은 그 자체로 비현실적이었다. 다행히 다친 사람 없이 얼룩말도 무사히 동물원으로 돌아간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이른바 ‘동물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업스테이트 대학교 사회학과의 클리프턴 피(P). 플린 교수는 본래 가정폭력을 연구했지만, 이 과정에서 동물학대가 가정폭력과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성과 어린이보다 먼저 폭력의 희생자가 되는 것이 가정에서 키우던 애완동물이더라는 것이다. 때로 어린이들이 동물을 괴롭히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지만, 콘월대 연구에 따르면 ‘동물에게 잔혹하게 구는 것은 유아기에서 성인기에 이르기까지 심리적 장애가 꾸준히 이어졌다는 증거’로 동물학대는 그 자체로 정신적 장애의 징표라고 분석했다.

동물에게 폭력적인 사람은 인간에게도 폭력적인 경향을 보인다는 많은 연구 결과가 있다. 이른바 ‘링크(연결성) 가설’이다. 미 연방수사국(FBI)에 따르면 연쇄 강간이나 살인 등 잔혹범죄를 저질렀던 범죄자 중 다수가 동물을 학대한 전력이 있으며, 인간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르기 전 동물을 상대로 예행연습을 벌였던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처럼 동물학대와 잔혹범죄 사이의 연관성에 관한 연구들이 축적되면서 미국은 2016년부터 동물학대를 반사회적 범죄로 분류하기 시작했고, 미국의 50개 주에서 동물학대를 중범죄로 처벌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렇다면 동물을 사랑하는 행위는 아무 문제가 없을까? 동물학대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동물과 인간,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더욱 중요하다. 최근 들어 ‘애완’ 대신에 ‘반려’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지만, 반려동물의 안녕이 전적으로 인간의 선의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을 보면 ‘노예’와 다를 바 없다. 아무리 자애로운 주인일지라도 반려동물에 기대하는 수준이 있기 마련이고, 자신의 기대에 따르지 못하거나 주거 환경 등 생활조건이 변하면서 끝까지 책임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무엇보다 애완용 동물의 사육은 탄생부터 생육, 죽음에 이르는 전 과정이 자본에 의해 산업화되어 있다.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애완동물 산업의 규모가 확대되었고, 상업적·산업적으로 유통되는 애완동물 대부분은 대형번식시설에서 태어난다. 잡종과 순종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기 때문에 이른바 순종으로 개량된 품종들은 유전병을 달고 태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또한 애완동물 사료 산업은 인간에게 애완 받지 못하는 다른 동물의 죽음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특별한 표시가 없는 한 애완동물 사료 대부분은 도살장에서 도축된 가축의 부산물이나 폐기물, 심할 경우 이른바 ‘다우너’라고 하여 인간에게 제공되는 것이 금지된 동물 사체로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다. 또 이와 별도로 애초에 동물사료용으로 사육되는 동물도 있다. 트롤어선으로 잡는 수산물 중 이른바 돈이 되는 상업적 어종 8%를 잡기 위해 나머지 92%는 버려진다.

여성이 남성을 위해 창조된 것이 아닌 것처럼, 흑인이 백인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동물 역시 인간을 위해 태어나거나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은 각자의 존재 이유가 있다.

전성원/<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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