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모스 저작집 서문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지음 l 박정호·박세진 옮김 l 파이돈 l 1만5000원
프랑스 사회학·인류학의 거두 마르셀 모스가 세상을 떠난 1950년, 모스의 연구 결과물을 모은 <사회학과 인류학>이 출간됐다. 그 책에는 긴 서문이 달려 있었는데, 그 글을 쓴 사람이 후배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1908~2009)였다. 레비스트로스의 ‘서문’은 뒤에 <마르셀 모스의 저작집 서문>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졌고 독립된 텍스트로 유통됐다. 이 서문이 ‘마르셀 모스 선집’을 기획한 연구자들의 손을 거쳐 우리말로 처음 번역됐다. 옮긴이들은 본문의 분량에 육박하는 장문의 해제도 함께 실었다.
이 ‘서문’이 모스의 책과 무관하게 독자적 생명을 얻게 된 것은 이 글에 레비스트로스의 중요한 이론적 성취가 응축돼 있기 때문이다. 이 서문을 작성하기 한해 전인 1949년 레비스트로스는 <친족관계의 기본 구조>라는 저작을 출간했다. 이 책에서 레비스트로스는 로만 야콥슨의 구조언어학 이론에서 얻은 통찰을 활용해 ‘구조주의 인류학’의 첫발을 내디뎠다. 그 직후에 쓴 이 서문에서 레비스트로스는 자신의 새 관점을 과감히 적용해 모스 사상을 재해석했다. 다시 말해, 모스의 저작에서 구조주의적 사유의 원형을 발견해 자기 방식으로 확대했다. 그러다 보니 이 서문은 모스 사상의 충실한 해설이 아니라, 모스 사상을 빌린 레비스트로스의 자기 해설이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본문에서도 레비스트로스는 그런 평가를 예감하듯 이렇게 말한다. “분명히 어떤 이들은 경솔하다고 판단하겠지만, 정해진 경로를 벗어나 모스 사상의 극한까지, 아니 어쩌면 그 너머까지 논의를 끌고 가면서 나는 모스가 독자나 청중에게 제공했을 생각거리가 얼마나 비옥하고 풍부한지 보여주고 싶었다.” 요컨대 이 서문은 모스 사상이 레비스트로스 사상으로 변형되는 현장을 보여주는 글이다.
구조주의 시대를 연 프랑스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이 글에서 레비스트로스가 집중적으로 거론하는 것이 ‘상징체계’라는 자신의 구조주의적 개념이다. 상징체계란 인간을 둘러싼 모든 것을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게 해주는 무의식적 체계를 말한다. 이 상징체계는 언어와 같은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인간이 언어 안에서 태어나 언어의 구조 속에서 살아가듯이, 사회도 상징체계 안에서 형성되고 작동한다. 사회는 상징체계의 산물이다. 상징체계가 존재함으로써 인간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이해되고 해석된다. 레비스트로스는 말한다. “사물들은 상징체계를 벗어나는 순간 소통이 불가능해진다. 따라서 사물들을 상징체계라는 본성으로 되돌리는 것이 관건이다.” 상징체계에 통합되지 않은 채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없는 셈이다. 언어가 인간을 지배하는 무의식적 체계이듯, 상징체계도 무의식적 체계다. 이 무의식적 상징체계는 구조적으로 작동하는데, 이 상징체계의 구조적 작동을 규명하는 것이 인류학의 과제라고 레비스트로스는 말한다.
레비스트로스의 ‘서문’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이 모스의 대표작 <증여론>에 대한 논평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증여론>이 “민족학적 사유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경험적 관찰을 넘어 더 근원적인 실재에 도달하려는 노력”을 보여줌과 동시에 “모스가 통과하지 못한 결정적 지점”도 안고 있다고 지적한다. 모스 자신이 일찍이 정식화했던 원칙, 곧 ‘전체의 통일성은 각각의 부분들보다 더 실재적이다’라는 원칙을 ‘미개사회’의 선물 교환을 해명하는 데 적용하지 못했다는 비판이다. 모스는 <증여론>에서 ‘주기-받기-돌려주기라는 삼중의 의무’를 통해 선물의 순환을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바로 이런 발상이 모스 사유을 제약한 장애물이라고 레비스트로스는 말한다. 이 세 가지 의무를 따로 떼어 놓은 뒤 접합할 것이 아니라, 그 셋을 아우르는 ‘교환’ 자체를 먼저 보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다시 말해 교환은 요소들의 합성물이 아닌 ‘분할 불가능한 전체’라는 것, 의무들이 아니라 교환 자체가 근원적 현상이라는 것이 레비스트로스가 말하려는 것의 핵심이다. 교환을 전제로 할 때만 주기-받기-돌려주기가 가능하다. 레비스트로스는 교환을 일종의 커뮤니케이션으로 이해하고 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상징체계로서 사회 구조가 작동한다고 본다. 사회 구조를 작동시키는 커뮤니케이션 곧 교환이라는 근원적 현상 안에서 선물을 주고, 받고, 돌려주는 행위들이 이루어지는 것기다.
이 글은 모스 사상의 새로운 해석을 통해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 인류학이 등장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런 이유로 이 ‘서문’은 일부 학자들 사이에서 ‘구조주의 선언문’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1950년대 이후 프랑스 학계를 지배할 구조주의 시대를 맨 앞에서 불러낸 것이 이 글인 셈이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