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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오만한 인류의 적은 인간…자연의 복수를 피할 수 있을까 [책&생각]

등록 2023-04-14 05:00수정 2023-04-14 10:46

고유전학으로 본 인류사 30만년
지능 바탕해 진화, 팽창한 인간

거대동물 멸종과 자원고갈 초래
자기파괴적 질주 멈춰야 할 때
고고유전학의 성과를 바탕으로 상상해 그린 네안데르탈인의 모습. 네안데르탈인은 현생인류 호모 사피엔스와 한동안 공존하다가 결국 경쟁에서 밀려 멸종했다. ⓒTom Björklund, 책과함께 제공
고고유전학의 성과를 바탕으로 상상해 그린 네안데르탈인의 모습. 네안데르탈인은 현생인류 호모 사피엔스와 한동안 공존하다가 결국 경쟁에서 밀려 멸종했다. ⓒTom Björklund, 책과함께 제공

호모 히브리스
인류, 그 거침없고 오만한 존재의 짧은 역사
요하네스 크라우제·토마스 트라페 지음, 강영옥 옮김 l 책과함께 l 2만원

‘히브리스’(hybris 또는 hubris)는 인간의 오만을 가리키는 그리스어다. 그리스 신화와 비극에서 자주 다뤄지는 주제 중 하나로, 절제와 겸손에 대한 가르침을 수반한다. 독일의 고유전학자 요하네스 크라우제 튀빙겐대 교수와 언론인 토마스 트라페가 함께 쓴 <호모 히브리스>는 바로 이 말에 현생인류의 핵심이 담겨 있다고 본다. “20세기는 호모 사피엔스를 호모 히브리스로 만들었다.”

책은 대체로 현생인류의 출현에서부터 21세기 현재까지를 시간순으로 좇으며 인간의 진화와 발전 과정을 보여준다. 대략 30만 년 전 아프리카 어딘가에서 발생한 호모 사피엔스는 아라비아 반도를 거쳐 유라시아로 건너와서는 그곳에 먼저 자리 잡고 있던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을 몰아내고 만물의 영장 자리를 차지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4만 년 전이었다. 데니소바인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적지만, 네안데르탈인은 호모 사피엔스보다 뇌 용량도 컸고 신체적으로도 강건했으며 추위에 대한 적응력도 뛰어났다. 그럼에도 그들은 멸종했고 현생인류가 살아남은 까닭은 무엇일까. 지은이들은 현생인류가 지닌 문화적 능력 특히 사냥과 살인 기술에 주목한다. 네안데르탈인 역시 매머드를 사냥해 먹었지만, 인간은 칼날과 창, 작살, 덫 같은 무기를 사용함으로써 가장 효율적인 킬러로 등극했다. 게다가 인간은 불을 사용할 줄 알았고 바늘과 실로 가죽옷을 만들어 입었기 때문에 극한의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인간은 유라시아 동쪽 끝과 아메리카 대륙, 태평양의 섬들과 오스트레일리아 등 지구 곳곳으로 퍼져 나갔으며 가는 곳마다 특유의 사냥 능력을 발휘했다. “그들이 가는 곳마다 모든 거대동물이 삽시간에 사라졌다.” 유라시아에서는 매머드와 털코뿔소, 메갈로케로스, 동굴 곰, 동굴 사자 등이 멸종 위기를 맞았고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디프로토돈, 주머니사자, 드로모르니스, 메갈라니아 같은 거대동물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아메리카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숲이 무성한 파라다이스였던 이스터섬은 인간이 들어온 뒤 황량한 풀밭으로 바뀌었다.

“팽창, 소비, 정복이 디엔에이(DNA)에 쓰여 있는 존재”로서 인간은 진화와 확산을 거듭했지만, 거기에는 지구의 자원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에 대한 고려가 빠져 있었다. “이제 지구의 한계가 인간의 앞에 놓여 있기 때문에 진화의 특성으로는 더 이상 할 것이 없다.” 그럼에도 “호모 히브리스는 성장의 한계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하다.” 자기파괴적 충동이 고삐 풀린 말처럼 인류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형국이다.

“우연은 진화의 핵심 동인이다.” 현생인류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살아남아 지금에 이른 것은 수많은 우연과 행운이 중첩된 결과다. 호모 사피엔스의 종적 특징이라 할 지능이 발전을 이끌었지만, 인간의 뇌는 동시에 공룡을 멸종시킨 운석만큼이나 위협적이기도 하다. 기후위기와 핵무장은 인간의 오만한 뇌가 만들어낸 괴물들이다. “이제 우리의 마지막 적은 우리 자신이 되었다.”

그리스 신화와 비극에서 히브리스의 죄는 네메시스 곧 응징과 복수를 부른다. 우리가 네메시스의 운명을 벗어날 수 있을까. 지은이들은 “이제 다음 도약을 위해 준비할 때다”라는 결론으로 책을 마무리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정말로 필요한 ‘도약’은 절제와 겸손이 아닐까.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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