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정 지음 l 갈라파고스 l 1만7000원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 <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사람들>을 써 주목받은 르포 작가 희정이 이번에는 ‘좋은 노동자’가 될 자격을 박탈당하거나 ‘좋은 노동자 되기’를 일정 부분 포기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의 새 책 <일할 자격>은 직장과 가정, 사회에서 요구하는 ‘한 사람 몫을 다 하는 사람’이란 기준이 얼마나 높은 문턱인지 여러 노동자들의 삶을 통해 보여준다. 동시에 차별과 배제, 낙인의 기준이 되어버린 문턱 안으로 어떻게든 발을 들이밀려고만 하는 우리에게 과연 그 문턱 안으로 들어갈 수나 있는지, 또 그 문턱이 타당한지 질문하도록 만든다. 책 표지를 보면 사회가 생각하는 ‘정상 노동자’의 자격 기준이 파란 글씨로 선명하게 쓰여 있다. ‘성실한’ ‘열정적인’ ‘무난한’ ‘젊은’ ‘건강한’ ‘생산적인’ ‘절제력 있는’ ‘독립적인’ ‘지적인’과 같은 단어들이다. 사회 통념상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이 기준이 ‘일할 자격’에 해당한다. 반면 흐릿하게 잘 안 보이고 눈에 띄지 않는 회색 글씨로는 ‘결함 있는’ ‘얕보이는’ ‘별난’ ‘멍청한’ ‘골골대는’ ‘둔한’ ‘무절제한’과 같은 단어들이 쓰여 있다. ‘정상 노동자’들에 비춰지는 ‘나쁜 노동자’의 모습이다. 작가는 이 지점에서 ‘노동자 되기’에는 수많은 인위성이 존재한다고 예리하게 지적한다. 사회가 ‘바람직하다’ ‘마땅하다’고 요구하는 인위적인 기준들로 노동자는 “규율과 통제를 수용하고 이윤의 획득을 긍정적 가치로 이해하고, 자신의 몸이 그 가치를 만들어내는 데 사용됨을 적극적으로 수락하는 몸이 되어”가기 때문이다. 직장인이라면 마땅히 해야 하는 꾸밈 노동이 싫어서, 상사에게 보여주기 위해 하는 야근이 싫어서, 끊임없이 뭔가를 존재 증명해야 하는 것이 싫어서 다른 삶의 궤도를 만들어나가는 청년들의 목소리가 신선하게 다가온다. 책은 단지 그들을 ‘차별되고 배제되고 소외된 사람들’로 그리지 않는다. 보이든 보이지 않든 엄연하게 존재하는 그들에게 마이크를 주고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역시 기록노동자 희정답다. 자본주의적 가치를 그대로 내재화해 더더더 생산적이려고 자신을 채찍질하는 우리에게 일터가 작동하는 방식에 의문을 품고 ‘정상’ ‘비정상’의 기준에 대해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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