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꺼 주세요
마샤 다이앤 아널드 글, 수전 레이건 그림, 김선영 옮김 l 푸른숲주니어(2021)
동네 어린이들이 많이 다니는 길에 아이스크림 가게가 생겼다. 목이 좋은 길모퉁이다. 하교 시간이면 아이스크림이며 과자를 고르는 어린이들이 제법 북적인다. 저녁 무렵에는 학원을 오가는 청소년들도 들락날락한다. 이렇게 쓰고 보니 여기서 무슨 재미있는 일이라도 일어날 것 같지만 실제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 가게는 텅 비어 있을 때가 더 많다. 말 그대로 사람이 아무도 없다. 요즘 유행하는 ‘24시간 무인 판매점’이기 때문이다. 가게에 사람이 없을 때도 냉난방기는 부지런히 돌아간다. 당연히 조명도 온종일 환하다. 손익이야 어떤지 몰라도 나는 아무래도 마음이 불편하다. ‘전기 아까운데, 사람이 없을 때는 나라도 그냥 들어가 있을까?’ 하는 이상한 생각도 해보았다. 오늘날의 에너지는 모든 이들의 공동 자산이니까.
요즘 기후 위기, 에너지 문제를 다루는 그림책들 가운데 당위성을 너무 강조해서 재미없는 작품, 자연을 너무 낭만적으로 그려서 오히려 거리감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을 종종 만난다. 책은 인간과 동물의 공존을 강조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어린이의 생활에서 동물을 볼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에 독자가 실감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불을 꺼 주세요>는 이 주제를 어린이가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전달하는 그림책이다. 깊은 밤 굴에서 나온 아기 여우는 밤이 너무 밝아서 놀란다. 자동차의 빛, 가로등의 빛, 다리의 빛 등 세상은 온통 “빛 천지”다. 아기 여우는 딱정벌레와 함께 “밤의 어둠”을 찾으러 나선다. 불빛 때문에 별을 찾지 못해 자리를 맴도는 새, 어두워지지 않아 울지 못하는 개구리, 산속 동굴에까지 스며드는 불빛에 겨울잠을 자지 못하는 곰이 합류한다. 이들은 바다로 가는 길을 몰라 헤매는 아기 바다거북들을 데리고 먼 곳의 섬을 찾아간다. 거기서 마침내 어둠을 찾아내자 모든 것이 보인다. 어둠 속에서 선명해지는 눈빛들, 꽃과 벌레 들이 화려하다. 밤에 생활하는 동물들, 달과 별에 의지하는 동물들에게 어둠은 마치 빛과 같은 것이다.
“불 좀 꺼 주세요!”라고 당당하게 외치는 아기 여우는 첫 장면부터 독자의 응원을 맡아 놓는다. ‘어둠을 찾으러 간다’는 주된 사건은 단순하지만, 대열에 합류하는 동물들의 사연이 제각각이라서 이야기가 단조롭지 않다. 도시를 벗어나도 동물들을 끈질기게 따라오는 ‘불빛’은 빛의 어두운 면과 어둠의 밝은 면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이런 그림책을 읽은 뒤에는 어린이와 나눌 이야기가 많다. 어둠이 필요한 동물은 또 누가 있을까, 도시에 사는 동물들은 누가 있을까 찾아볼 수 있다. 잠자리에서 읽어도 좋겠다. 아주 작은 불빛까지 모두 차단하고 어둠을 불러보면 어떨까. 인간인 우리에게도 어둠이 필요하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아이스크림 가게 근처에 길고양이 급식소가 있다는 게 생각났다. 아침에 낮에 어린이가 다니는 길은 밤에 고양이가 다니는 길이다. 어린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어야겠다.
김소영 독서교육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