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비정규노동센터 기획한
비정규직 노동자 수기 묶음
생생하고 적나라하게
‘일터 속 차별’ 솔직하게 담아
비정규직 노동자 수기 묶음
생생하고 적나라하게
‘일터 속 차별’ 솔직하게 담아
서울 송파구 서울복합물류센터에서 택배 상하차 노동자가 일하고 있는 모습이다. <일복 같은 소리>에 참여한 택배 노동자 박미리씨는 1주 6일 근무를 채우지 못하면 주휴 수당이 날아가니 아파도 집안에 무슨 일이 있어도 일한다고 말한다. <한겨레> 자료사진
투명한 노동자들의 노필터 일 이야기
한국비정규노동센터 기획, 신진호 등 비정규직 노동자 44명 지음 l 동녘 l 1만8000원 외환위기 전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 ‘비정규직’이라는 말은 거의 쓰이지 않았고, 정규직 고용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서 한국 사회에서는 공공 부문 민영화, 노동의 유연화 같은 신자유주의 정책이 확대됐고, 3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전체 임금 노동자의 40%(한국비정규노동센터 집계)를 차지하는 지경으로까지 변했다. <일복 같은 소리>는 이런 상황에서 바깥에 나가면 금방 만날 수 있는, 이를테면 술집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청년, 청소 노동자, 돌봄전담사, 방송작가, 요양보호사, 택배 노동자 등과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 44명의 목소리를 담은 생생한 ‘노동 일기’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지난 12년 동안 진행한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응모작 가운데 44편을 추려 북펀딩(총 213명 참여)을 통해 최근 출간했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만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모습은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시위하는 모습들이 많다. 그러나 이들의 노동 조건과 환경은 어떤지 또 그들이 일터에서 느끼는 생각과 감정이 어떤지 모른다면, 시위는 그저 ‘남의 일’이거나 ‘불편한 일’이 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 연세대 대학생들이 교내에서 처우개선 집회를 연 청소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집회가 학생의 수업을 방해하고 있다”며 고소한 일일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이들에게 옆집에 사는 내 이웃이 직접 자신의 삶과 일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비정규직의 삶을 쉽게 공감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가습기 공장에서 핵심 부품을 만드는 일을 하는 김현정씨는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지만 회사 로고가 찍힌 작업복을 입지 못한다. 비정규직이기 때문이다. 회사의 치사함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정규직 노동자에겐 겨울 작업복을 주고, 비정규직인 자신에겐 직접 사서 입으라고 한다. 상여금이나 명절·휴가 수당도 정규직만 준다. 현정씨와 직업도 일터도 다르지만,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이런 일은 똑같이 벌어진다. 우체국에서 우편물 분류 일을 하는 김진숙씨도, 고용노동부 고용센터 4년차 무기계약직으로 일하는 장다연씨도 비정규직이라 명절 수당이나 상여금을 받지 못하고 몇 년을 일해도 월급은 쥐꼬리만큼 받는다. 기간제, 아르바이트, 외주용역, 프리랜서, 사내하청, 계약직 등의 이름으로 사회 곳곳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위험의 외주화, 차별과 무시는 공기처럼 일상화됐다. 44명의 글은 솔직하고 담백하다. 처절한 호소이거나 절규하는 글이 아닌데도, 사연들을 읽고 나면 마음이 묵직해진다. “본인이 선택한 것 아니냐” “능력이 부족해 비정규직이 된 것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책은 비정규직 이웃들과의 ‘공감 네트워크’를 형성해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해준다. 책이 일터별로 노동자들의 사연을 묶기만 한 점은 아쉽다. 비정규직의 역사나 비정규직 관련 주요 현안을 정리해주고, 나쁜 일자리를 줄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사연 뒤에 덧붙여줬다면 더 짜임새 있고 친절한 책이 되지 않았을까. 이 책을 읽고 비정규직을 둘러싼 불합리한 사회 구조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꼈다면,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가 기획한 <모두를 위한 노동 교과서>(김철식·김혜진 등 9명 지음, 오월의봄 펴냄)나 <중간착취의 지옥도>(남보라·박주희·전혼잎 지음, 글항아리 펴냄) 같은 책도 함께 읽어보자. 비정규직 문제를 보다 입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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