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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800살 나무, 두루미 사랑춤…‘은둔의 땅’ DMZ 답사기 [책&생각]

등록 2023-05-12 05:00수정 2023-05-12 16:28

15년간 경기도 접경지역 담당 기자
사람·생태·평화 중심의 500㎞ 답사

생생한 사진·역사·사람 이야기 풍성
“더불어 살아가는 땅으로 기억되길”
800년 전 바다 건너 황해도 연안군 호암리에서 떠내려온 볼음도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사월의책 제공
800년 전 바다 건너 황해도 연안군 호암리에서 떠내려온 볼음도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사월의책 제공

두루미의 땅, DMZ를 걷다
백령도에서 화진포까지 500㎞의 이야기
박경만 지음 l 사월의책 l 2만7000원

한반도 비무장지대(DMZ)는 수많은 지뢰와 가시 철책으로 둘러싸인, 전쟁과 분단의 아픔이 서린 곳이다. 1953년 7월27일 동족끼리 총구를 겨누던 전쟁이 멈춘 뒤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북 각 2㎞씩 비무장지대라는 완충지대가 생겼다.

70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 지역은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은둔의 땅’이 됐지만, 또 사람이 드나들지 않아 연천·파주·철원 등지는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인 두루미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모여드는 곳이 됐다.

<두루미의 땅, DMZ를 걷다>는 <한겨레>에서 경기도 접경지역 담당 기자로 15년 동안 일한 박경만 기자가 서해바다 끝 백령도부터 임진강과 한탄강 유역, 강원도와 동해안 일대에 이르는 총 500㎞의 구간을 답사한 결과를 담은 책이다.

책 맨 앞에 비무장지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지도를 보여준 뒤, 지은이는 서해 끝에서 동해까지 비무장지대 접경지역을 횡단하며 독자를 이끈다. 책에 수록된 곳곳의 생생한 사진을 보고 지은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독자 역시 답사 현장에 온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강화도에서 서북쪽으로 7㎞ 떨어진 볼음도에는 높이 24m, 둘레 8.96m의 은행나무가 있다. 800년 전 바다 건너 황해도 연안군 호암리에서 떠내려온 은행나무를 주민들이 건져 심었다는 이 나무는 사진만 봐도 장엄하고 유구한 역사의 숨결이 느껴진다.

또 책에는 떼를 지어 날고 있는 두루미, 들판에서 떨어진 곡식을 먹고 있는 재두루미 무리, 사랑춤을 추고 있는 재두루미 한 쌍의 사진 등 다양한 두루미 사진이 실려 있는데 이러한 생태 사진만으로도 볼거리가 풍성하다.

지은이는 이처럼 생생한 사진과 함께 비무장지대를 둘러싼 역사적 사건과 이슈를 간명하게 정리해준다. 또 현재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나 다채로운 생태 이야기도 들려준다. ‘사람·생태 중심의 DMZ 답사 종합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진강에서 사랑춤을 추고 있는 재두루미 한 쌍. 임진강변 생태탐방로에서는 이런 광경을 쉽게 볼 수 있다. 사월의책 제공
임진강에서 사랑춤을 추고 있는 재두루미 한 쌍. 임진강변 생태탐방로에서는 이런 광경을 쉽게 볼 수 있다. 사월의책 제공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사람과 환경을 중시하고 평화를 지향하는 지은이의 가치관이 책 전반에 스며들어 있다는 점이다. 지은이는 두루미 먹이터인 논 습지가 비닐하우스나 대규모 축사, 인삼밭, 과수원 등으로 바뀌면서 철새 마을 양지리에 찾아오는 두루미 개체 수가 과거보다 1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한반도와 산둥반도를 오가는 철새들의 정거장 구실을 하는 백령도에 오는 2029년 공항이 들어서면 생태계가 파괴될 것을 걱정한다. 그는 영국 출신의 조류학자 나일 무어스 박사의 입을 빌려 ‘생태·평화 관광지로서의 백령도’를 강조하기도 한다.

지은이는 비무장지대에 대해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일회성 관광지로 이곳에 다녀가지 말기를 독자에게 당부한다. 비무장지대가 남침용 땅굴이나 포격, 지뢰와 같은 어두운 이미지가 아닌 “지구 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생명체인 두루미와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땅으로 기억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긴 다리를 뒤로 쭉 뻗고 아름다운 날갯짓을 하는 두루미에 매혹돼 이 지역 답사에 나선 지은이는 현장을 누비는 기자 정신으로 또 자연을 사랑하는 소년과 같은 마음으로 비무장지대 곳곳을 누비고 탐색해 독자가 비무장지대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안내한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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