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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여기자가 ‘마초 정치’를 바꾼다!

등록 2006-03-16 20:12수정 2006-03-17 16:37

16일 국회 출입기자들이 열린우리당 의원총회가 열리고 있는 국회 예결위회의장 뒷좌석에 앉아 취재하고 있다. 남자들에게 둘러싸인 정치판에서 여기자들은 좀더 치열해질 것 을 요구받는다. 이종찬기자 rhee@hani.co.kr
16일 국회 출입기자들이 열린우리당 의원총회가 열리고 있는 국회 예결위회의장 뒷좌석에 앉아 취재하고 있다. 남자들에게 둘러싸인 정치판에서 여기자들은 좀더 치열해질 것 을 요구받는다. 이종찬기자 rhee@hani.co.kr
요정 문 박차고 나왔다는 한국정치
‘최연희의 성추행’으로 ‘마초본색’ 만천하에
남기자-정치인 밀실 짝짜꿍도 한몫
섬 속의 섬 국회 여기자 60여명
버텨라, 버텨라…여의도가 변한다
현장속 현장

정치판은 남자들의 세계다. 마초 문화가 판친다. 보스가 있고, 서열이 있다. 대통령이나 당 대표의 지시라면 비합리적이라도 무조건 따라야 한다. 과거에 비해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다른 부문에 비해선 아직도 그런 요소가 꽤 남아 있다.

옛날에 잘나가는 마초들은 요정에 모였다. 당연히 ‘요정 정치’의 시대가 있었다. 그곳에서 여자는 남자들의 성적 노리개였다. 최연희 전 한나라당 사무총장의 <동아일보> 여기자 성추행 사건 뒤에는 마초 문화가 깊숙히 배어 있다.

이번 일로 억울하게 구설에 오른 사람들이 있다. 정치인을 취재하는 각 언론사 정치부, 또는 정치팀의 여기자들이다. 인터넷에는 “여기자 가슴은 금으로 만들었냐”는 글이 뜨기도 했다. 여기자 성추행 사건이 어린이 납치-강간-살해 사건, 여자 재소자 성추행 사건 등을 여론의 관심사에서 밀어내버린 것을 비판하고, 한나라당과 동아일보의 유착을 공격하기 위한 글이었지만, 어쨌든 그 말을 들은 ‘여기자’들은 억장이 무너졌을 것이다.

성추행 사건 이후 정치인들이 여기자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각성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면 좋겠지만, 불행하게도 그렇지가 않다. 여기자와 악수를 하면서 “이래도 되는지 겁난다”고 농담을 건넨다. “왜 여자가 노래방까지 따라갔느냐”고 피해자를 비난한다. “60이 넘은 사람(최연희 전 사무총장은 62살이다)이 술에 취해서 실수를 좀 했는데 이해해 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동정론을 편다. 사건의 본질을 직시하지 않고, 여기자들을 비아냥대고 있는 것이다. 술에 취해 맥주병으로 다른 사람의 머리를 쳤다면 동정론이 나올까? 정치인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확실하다. 마초 문화 탓이다. 이래서는 제2, 제3의 최연희 사건이 또 터지게 되어 있다.

우리 사회에서 성추행 사건이 ‘범죄’로 인식되려면 대다수 남자들의 생각을 바꿔야 한다. 마초 문화를 깨야 한다. 마초 문화의 본산은 정치판이다. 정치부 여기자들은 그런 의미에서 ‘전사’들이다.


마파도? 여의도 국회는 마초도

‘전사’들의 이력을 살펴보자. 정당이나 국회에서 취재를 하는 기자들은 대개 국회 출입기자로 등록되어 있다. 국회 출입기자는 매체별로, 많은 곳은 10명 이상, 적은 곳은 3~4명씩인데, 회사별로 대개 1~2명씩의 여기자가 포함되어 있다. ‘상시 취재기자’ 460명 가운데 60명 정도가 여성이다. 중앙 일간지, 방송, 통신 뿐만 아니라, 인터넷, 주간지, 지방 일간지, 지방 방송, 기관지 등을 모두 합쳐서 그 정도 숫자가 된다. 최근 늘어난 인터넷 언론사에는 특히 여기자들이 많다.

이 중에서 이른바 중앙 언론사, 즉 신문, 방송, 통신을 중심으로 일종의 ‘기자단’처럼 움직이는 여기자들은 20명이 조금 넘는다. 회사 별로 보면, <경향신문> 2명, <국민일보> 1명, <내일신문> 1명, <동아일보> 2명, <문화일보> 1명, <서울신문> 2명, <세계일보> 2명, <중앙일보> 1명, <한겨레> 1명, <한국일보> 1명, <연합뉴스> 3명, <한국방송> 1명, <문화방송> 1명, <에스비에스> 1명, <와이티엔> 1명, <시비에스> 1명 등이다.

출입처 별로 나누면, 열린우리당 담당 11~12명, 한나라당 담당 9~10명 정도다. 여기자들의 나이는 20대 후반과 30대 초반, 학력은 명문대 출신이 대부분이다. 대학 학번으로 말하면 96~98이 많다. 20여명 가운데 결혼을 한 사람은 5명 남짓이고, 아이가 있는 경우는 1~2명뿐이다.

정치부에 여기자들이 많아진 것은 2004년 이후, 17대 국회 들어서다. 그 전에는 여당과 야당에 각각 2~3명씩에 불과했다. 여기자가 늘어난 것은 정치 문화가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현실 영향이 크다. 과거 ‘정치부 기자’들은 정치인들과 함께 ‘정치’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기사를 잘 써주고 정보를 얻는 ‘거래’를 했다. 학연, 지연이 중요했다. 정치부 기자를 하다가 아예 출마를 하는 사람도 꽤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풍토가 바뀌고 있다. 언론의 위상이 추락하면서 정치부 기자들의 특권도 사라지고 있다. 정치부 여기자들은 그래서 늘어난 측면이 있다.

아무튼 대부분의 언론사가 국회에 여기자들을 배치하면서 ‘여기자단’ 같은 것이 생겼다. 여당 출입과 야당 출입으로 나뉘어 있다. 연락을 위한 간사도 선출되어 있다. 조직화되어 있는 것이다. 이들이 사실상 ‘정치부 여기자 1세대’다.

처음에는 여기자들이 취재원들을 불러냈다. “식사 한 번 하시죠.” 기자 간담회를 하자는 얘기다. 지금은 정치인들이 여기자들을 중요한 대언론 창구로 인식하고 있다. 당 대표나 원내대표, 최고위원 등 유력 정치인들은 일부러 여기자들을 찾아서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한다.

예를 들어 최근에는 김한길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이명박 서울시장이 여기자들과 함께 밥을 먹었다. 대화의 내용은 물론 정치 현안이다. 그냥 밥만 먹는 경우는 없다. 취재원들이 비보도를 요구하는 경우도 많지만, 기자들로서는 흐름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정치부 여기자들은 정치부 남자 기자들과 확실히 다르다. 상대적으로 더 성실하고 꼼꼼하다. 부지런하다. ‘여자라서’ 뭐가 어떻다고 욕을 먹기 싫어서다. 부드러움이라는 강점도 있다. 열린우리당 대변인을 맡고 있는 우상호 의원은 “취재원 입장에서 보면 여기자들은 남자들에 비해 훨씬 부드럽게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며 “편안하게 얘기를 하다가 필요 이상으로 너무 많은 것을 털어 놓게 되고 그래서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장점만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대부분의 여기자들은 몇 가지 결정적 장벽 때문에 고전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선 ‘젊은 여성’이라는 정체성 자체가 장벽이다. 여기자들은 마초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위험 수위를 넘나드는 성희롱을 일상적으로 받고 있고, 그래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최연희 전 사무총장 사건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여기자 성추행이나 성희롱 사건은 많다.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사건이 외부로 알려질 경우 여기자는 출입처를 잃을 수도 있다.

남자 정치인들과 개별적으로 만나기도 쉽지 않다. 정치부 기자들의 취재에서 ‘독대’는 정보 취득을 위한 가장 기본적 수단이다. 남자 기자들은 남자 정치인들과 사우나도 함께 갈 수 있고, 은밀한 장소에서 은밀하게 만날 수 있다. 여기자들은 그게 안된다. 은밀한 만남은 서로에게 부담이 되는 것이다.

연륜의 장벽도 있다. 각 정당의 아침 회의장에 가보면 기자들이 노트북 컴퓨터를 책상이나 무릎에 놓고 정치인들의 발언을 받아친다. 이 자리에는 여기자들이 유난히 많다. 정례회의를 챙기는 것은 각 언론사 ‘말진’(가장 연륜이 짧은 기자)들이 하는 일인데, 여기자들이 대개는 말진이다. 기사가 잘 안되는 허접스런 일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경험 부족, 시간이 해결한다

경험의 한계도 있다. 여기자들은 ‘정책 취재’에는 강하지만, ‘정치 취재’에는 약하다는 지적이 있다. 체질적으로 정치 투쟁에 별 흥미를 못느끼는 사람이 많다. ‘권력의 아웃사이더’로 성장한 탓일 것이다. 더구나 정치부에 온 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 같은 큰 선거를 치러본 적이 없다. 지난해 정기국회 기간에 열심히 일하던 여기자들이 올들어 ‘정치의 계절’이 시작되자, 다소 헤메는 경향이 있다. 어떤 여기자는 술을 마시고 울었다고 한다.

남자 기자들의 견제도 만만치가 않다. 어떤 남자 기자들은 여기자들의 모임을 해체하라고 공공연히 요구한다. 취재원들이 여기자들을 별도로 만나는 것이 남자들에 대한 차별이라는 논리다. 여자라는 특권을 포기하고 공정하게 경쟁하라는 얘기다. 말이 되는 것 같지만, 여기자들이 기본적으로 안고 있는 핸디캡을 생각하면 사실은 말이 안되는 요구다.

정치부 여기자들이 이런 여러가지 난관을 극복할 수 있을까? 있다. 오래 하면 된다. 결혼이나 육아 때문에 다른 출입처로 옮겨 가면 안된다. 남자들의 기득권은 사실 대부분이 경험과 연륜일 뿐이다. 과거 선배 여기자 몇 사람이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남자들과 함께 룸살롱에 갔기 때문이 아니다. 정치부 취재를 오래 했기 때문이다. 김현미 열린우리당 의원은 “여기자들이 좀더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고 조언을 한다. 주요 정치인들과 과감하게 독대를 해서 정보를 모으고, 정치의 흐름을 읽어내는 능력을 길러, ‘농익은’ 기사를 여기자들이 써야 한다는 것이다. 적절한 지적이다.

15개월 된 아이를 가진 정치부 여기자가 있다. 아이는 친정 엄마가 기른다. 새벽 6시30분에 집을 나와서 밤늦게 들어 간다. 아이가 엄마를 아빠라고 부른 일도 있다. 기자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가정에서 약간의 희생이 불가피하다. 그건 남자들도 마찬가지다. 여기자들이 정치부에 좀더 많아져야, 정치판이 바뀌고, 그래야 마초 문화가 깨진다. ‘수퍼우먼’이 되라는 얘기가 아니다. 뭐든지 오래 해야 잘 한다는 얘기다.

성한용 선임기자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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